Wednesday, March 11, 2015

  • 언론인·文人 떨게 하는 '빨간 펜 선생님' 

  • 김승재
    사회부 기자
    E-mail : tuff@chosun.com
    수습기자 시절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한 달 넘게 진도와 안산을..
    더보기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입력 : 2015.03.12 05:47 | 수정 : 2015.03.12 07:59
  • 스크랩 메일 인쇄
  • 글꼴 글꼴 크게 글꼴 작게

-'우리말 교열 박사' 이수열氏
20년간 5000명에게 편지 2만통
교사 출신에 국문법책만 5권 써… 한글학회 '우리말글지킴이' 위촉
"자기 언어부터 가꿔야 문화 강국"

올해 여든일곱인 이수열씨는 매일 아침 서울 은평구 집 근처 우체통으로 가서 편지를 열 통가량 부친다. 주로 신문사, 대학, 연구소로 보낸다. 며칠 뒤 편지를 받은 기자와 교수들은 당혹스럽다. 그들이 게재한 신문 칼럼이 곱게 오려져 있고, 그 위 곳곳에 빨간 펜으로 문법상 틀린 곳들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다소 긴 설명이 필요한 대목은 별도 종이를 사용해 주석 달 듯 기술했다. 꼼꼼하게 읽은 흔적이 역력하다. 필자들은 "대부분 나도 '아차' 싶은데, 수긍하기 힘든 부분도 없진 않다"고 말한다.

고교 국어 교사 출신인 이씨는 20년째 이 고단한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엔 일간지 두세 개만 보는데, 건강할 땐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을 10가지나 챙겨봤다. 그동안 보낸 편지가 2만통이 넘고, 받은 사람이 5000명은 된다고 한다. 주요 언론사 고참 기자나 칼럼니스트 가운데 그의 편지를 받지 않은 이가 드물다.
"신문의 글은 아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잖아요. 그러니 더 정확하고 아름다운 글이 퍼져가길 바라는 거죠."

그의 '빨간 펜'은 필자의 지위를 가리지 않는다. 원로 언론인, 소설가, 국문과 교수 등 평생 글로 먹고살아온 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여러 번 그의 편지를 받았던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당시 주필)은 2002년 '지적해줘 고맙다'는 답장 겸 연하장을 보내왔다. 반면 어느 교수는 전화로 "당신이 뭔데 남의 글에 멋대로 손을 대느냐"며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가 틀리기 쉬운 표현들을 정리한 책 '우리말 우리글, 바로 알고 바로 쓰기'와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는 교열기자들 사이에서도 '교본'으로 통한다. 한글학회는 2004년 그를 '우리말글 지킴이'로 위촉했다.

그는 국문법 책만 다섯 권을 썼지만 학력은 일제강점기에 고향인 경기도 파주에서 다닌 초등학교가 전부다. 1등으로 졸업했지만 너무 가난해 중학교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16세 때 교원 자격 검정고시를 봤고, 이후 47년간 초·중·고교 국어 교사로 근무했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나한테 배운 아이들이 대학 나온 선생들한테 배운 다른 아이들에게 뒤질까 봐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늘 배우고 연구하다 보니 '우리말 박사'가 돼 있더란 얘기다.

그는 "외국 단어를 무분별하게 쓰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영어나 일어식 문장을 남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고질적인 것 중 하나가 '~으로부터(from)'입니다. 대상이 사람이면 '~에게서'로, 사람이 아니면 '~에서'로 써야 바른 우리말이죠. 우선 이것부터 고쳐주세요." 그는 "자기 언어부터 문화어로 가꿔갈 줄 모르는 국민이 어떻게 '문화 강국'의 국민이 될 수 있겠느냐"고 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