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23, 2014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파워포인트는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

기사입력 2014.07.23 09: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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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사진)이 최근 사내에서 파워포인트 사용을 한달 간 금지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유는 파워포인트가 업무효율을 해치는 공공의 적이라는 것. 정 사장은 "각종 보고서는 물론 동호회 모임 고지까지 파워포인트로 정성스럽게 만드는 습관을 업무 효율을 해치는 공공의 적으로 기업문화팀이 발표. 전화나 이메일로 간단히 알리면 될 일도 PPT를 써야 멋있거나, 정중한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문화를 필히 바로 잡겠다고. 나도 대찬성."이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파워포인트는 단순히 업무효율만 떨어뜨리는 부작용만 있는 게 아니다. 파워포인트는 깊이 있는 생각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베조스 CEO는 사내에서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했다. 대신 6쪽 분량의 메모로 사안을 `묘사’할 것을 요구했다. 직원들이 글을 쓰고 천천히 생각하는 환경을 창조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다.

미군도 파워포인트의 해악을 잘 알고 있는 조직이다. 그래서 파워포인트 사용을 규제했다. 미군의 이 같은 흐름을 보도한 뉴욕타임즈 기사 제목은 매우 흥미롭다. `우리는 적을 만났다. 그것은 바로 파워포인트다.(We have met the enemy and he is PowerPoint.)`

뉴욕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미국 중부사령관을 역임한 제임스 매티스 장군은 2010년 4월 한 군사 콘퍼런스에서 "파워포인트는 우리를 어리석게 만든다(PowerPoint makes us stupid)"고 밝혔다. 이라크 전쟁 당시 북부 거점도시 탈 아파르(Tal Afar)를 장악하는데 성공한 H.R. 맥마스터 장군은 파워포인트 사용을 아예 금지시켰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맥마스터 장군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파워포인트)는 위험합니다.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환상,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을 창조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파워포인트는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정치, 경제, 윤리적인 맥락은 파워포인트의 큰 글씨 뒤에 숨어 버린다. 그 같은 복잡한 맥락을 보지 못한 채, 파워포인트의 큰 글씨에만 집중하다 보면, 우리는 진짜 중요한 정보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마치 문제를 이해하고 있는 듯한, 그래서 문제를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일쑤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참사다. 컬럼비아호는 2003년 2월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중에 폭발했다. 문제는 컬럼비아호가 폭발한 가능성을 사전에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과학자는 그 같은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 여기에는 파워포인트가 한몫 했다.

컬럼비아호는 지구에서 우주로 이륙할 때, 연료탱크에서 서류가방 크기의 단열재가 떨어져 나왔다. 이 단열재는 왼쪽 날개의 방열판에 충돌했다. 바로 이때 발생한 손상이 콜럼비아호 폭발의 원인이 됐다. 우주선이 대기권에 진입했을 때 받게 되는 고온의 열을 견디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당시 NASA의 `잔해 평가팀`(Debris Assessment Team) 소속 과학자들은 그 같은 손상이 컬럼비아호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조사하고 실험했다. 이 같은 조사는 콜럼비아호가 우주에 떠 있는 동안 진행됐다. 잔해평가팀은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활용해 `미션 평가실`(Mission Evaluation Room)에 조사 내용을 보고됐다. 그러나 당시 보고에서 컬럼비아호 폭발 가능성은 간과되고 말았다.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파워포인트였다. 컬럼비아호 사고조사 위원회 보고서 191쪽에는 이 같은 사실이 적시돼 있다. 예를 들어 안전과 관련된 핵심 정보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의 맨 아래 쪽에 표시돼 있었다. 연료탱크에서 떨어져나간 단열재 조각의 크기는 잔해평가팀이 안전성 평가를 위해 사용한 데이터 크기의 640배에 이르렀다는 정보였다. 이 같은 핵심 정보는 간과됐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브리핑을 들으면서 슬라이드의 맨 아래까지 눈길을 주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파워포인트에 쓰여진 단어도 애매모호했다. 무려 5차례나 쓰여진 `significant`(중요한)가 그랬다. 읽기에는 따라서는 승무원 전원이 사망할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지만,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슬라이드 제목(Review of Test Data Indicates Conservatism for Tile Penetration)도 뜻이 애매모호해 혼선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슬라이드에는 `입방 인치(cubic inch)`라는 단위 조차도 표기가 일관되지 않았다.

이처럼 파워포인트에는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인 단어가 큰 글씨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브리핑을 듣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그 뜻을 이해하고 있다는 환상에 빠진다. 그래서 큰 글씨 뒤에 숨은 진짜 중요한 정보와 맥락을 놓치기 쉽다. 컬럼비아호 조사 보고서 역시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실제 분석을 한 사람으로부터, 중간 관리자를 거쳐 최고 리더들에게 정보가 보고가 되는 과정에서, 핵심 설명과 부연 정보가 생략됐다. 선임 관리자는 이 파워포인트가 생명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 있었다." 파워포인트가 천재라는 NASA의 과학자들을 어리석게 만든 것 같다.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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