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4, 2015

[인터뷰] 박혜란 "결혼이란 우연한 기적 같은 것" 

윤예나 기자 | 2015/03/21 08:00
 결혼 45년차 여성학자 박혜란은 “결혼도 정년제를 두면 서로 긴장도 하고 좋지 않을까요”라고 하고는 웃었다. /김지호 기자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남편과의 만남이 운명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우연한 만남이라고 생각하면 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운명이란 말은 뭔가 비장미가 느껴지지만 우연이라는 말은 경쾌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운명적인 만남이라면 무조건 순응해야 할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진다. 어떻게 감히 지지고 볶고 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감히 아이고, 열두 번도 더 이혼하고 싶다는 푸념을 입 밖으로 뱉을 수 있었겠는가.

그보다는 나의 멋진 운명은 따로 있었는데 그 운명을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다른 남자를 만나 인생이 꼬였다고 믿고 사는 게 훨씬 견딜 만하지 않은가. (중략) 이 넓은 지구,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몇십 년을 지지고 볶으면서도 헤어지지 않고 끈질기게 함께 살아왔다는 것, 그것 자체가 기적이다."

교육열 뜨거운 우리나라에서 이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을 엄마가 있을까. 자신의 실명보다 ‘가수 이적 엄마’로 더 유명한 여성학자 박혜란(69). 그는 세 아들을 ‘과외 한 번 없이’ 다 서울대에 입학시킨 ‘자식 농사’로 일찌감치 세간에 알려졌다.

자신의 성공적인 자녀 육아 경험을 토대로 쓴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1996)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2013)은 출간되는 족족 엄마들 사이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가 이번엔 '일등 엄마'라는 익숙한 타이틀을 뒤로 하고,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온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아본 책을 냈다. 제목은 '결혼해도 괜찮아'. 결혼을 ‘하면 좋다’는 것도 아니고 ‘해도 괜찮다’니,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헷갈린다. 책 표지 날개에 써놓은 저자 소개를 읽으면 의구심은 더 커진다.

“‘연애와 결혼은 따로’라고 말하는 여자들을 속물이라 비웃으며 스물다섯에 결혼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현명한지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혼해서 살아 보기도 하고, 결혼 안 하고 살아도 봐야 그 다음엔 제대로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 다음 생에선 결혼 안 하고 살아 보고 싶다."

정말 결혼해도 괜찮다는 건지 의심스러워 직접 만나 캐물어 보기로 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골목 작은 카페에서 그와 만났다. 숏커트로 자른 은회색 머리에 낭랑한 하이톤의 목소리. 살짝 아래로 처진 눈꼬리에 사람 좋은 눈웃음이 자주 걸렸다. 여섯 명의 손자손녀를 둔 '할머니'가 45년에 접어든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처녀 수다 떨듯’ 마구 쏟아냈다. 호호 깔깔, 몸까지 들썩이며 웃기도 했다. 그럴 때는 마치 중학생 소녀로 돌아간 듯했다.

-목소리가 굉장히 젊은 느낌이다.

원래 내 목소리가 좀 독특하다고들 한다. 옛날 연극할 때에도 무대에 서면, 소리를 외치지 않아도 홀 끝까지 잘 들린다고 했다.(그는 책에 ‘대학 1학년 가을 학기 늦은 오후, 교정을 어슬렁거리다 여대생 헌팅에 나선 연극반 선배와 운명처럼 눈이 맞아 오 년 반을 불같이 연애했다’고 썼다.) 다들 나한테 천부적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면서 배우가 돼야 한다고 했는데! 결혼하느라 배우가 못됐지.(웃음)

-결혼 때문에 꿈을 못 이뤘다는 건가?

그렇지, 다 결혼 핑계를 대야지.(웃음)

-최근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하지 않아도 좋다”고 답한 비율이 40%로 나왔다. '결혼해도 괜찮다'는 책을 쓴 이유는?

시점을 일부러 맞춘 건 아니다. 늘 결혼에 대해 한 번 써야겠다 싶었다. 나는 원래 세계에 대한 멋진 책을 써온 사람은 아니다. 내 생활과 주부로서의 삶, 엄마로서의 삶, 여성학자로서의 삶 같은 걸 다뤘다. 하지만 생활 속 이야기를 그냥 한 번은 뭐든지 생각이 쌓이면 풀어내야겠다 그런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제 내가 결혼한 지 45년이나 됐고, 주변 젊은 친구들이 결혼에 대해 굉장히 불안해 하고 해서, 결혼 자체는 하고 안 하고에 따라 불안해 할 게 아니다, 그런 이야길 하고 싶었다. 나도 이미 결혼을 해봤지만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거라는 그런 생각이 늘 있다. 자기가 어떤 길을 택하든 행복하게 살면 된다 이런 이야길 하고 싶었다. 위로라고나 할까, 격려라고나 할까.

-결혼이 필수는 아니라는 답변에서 여성 비율이 더 높게 나온다.

왜 그렇겠나. 아무리 지금 양성평등 사회가 됐다고 해도, 그리고 예전에 비하면 여자들 결혼 생활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출산과 육아라는 부담이 따라오지 않나. 그러니 결혼하면 아무래도 여성이 남성보다 불리한 거다. 우리 때는 결혼은 필수, 일은 선택의 문제였다. 지금은 거꾸로 아닌가.

인생 백세 시대라는데 이제 여성도 그걸 살아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를 일생 먹여 살려줄 그럴 남자가 어디에 있겠나. 여성들도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니까, 또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선배들 통해 잘 알고 있으니, 결혼을 남자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보게 되는 거다.

-그런데도 결혼을 해도 괜찮다는 이유는 뭔가?

그건, 혼자 사는 것보다 뭐가 대단히 좋아진다거나, 순간순간이 행복하다거나 그런 기대만 하지 않으면...(웃음) 그래도 결혼을 하면 수많은 짧은 즐거움과 긴 괴로움이 교차하고 뒤섞이면서, 출산도 하고 인간관계에 시달리고 하면서도 성숙해지는 거니까. 인간이 성숙해지는 그런 보람이 있다고나 할까.

박혜란과 함께 둘러앉은 세 아이들. 사진 왼쪽부터 막내 동윤, 큰아들 동훈, 둘째 동준(이적)/나무를 심는 사람들 제공)

-제목은 '결혼해도 괜찮아'라고 했지만 정작 읽어보면 '안 해도 괜찮겠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근데 우리 때는 좀 환상을 가졌거든.

-배우자에 대한 요구 기준은 점점 더 높아지는 것 같다.

그렇다. (여성 입장에서) 배우자란 예전에는 먹여 살려줄 사람, 가장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점점 정서적 교감, 이런 걸 굉장히 강하게 요구하게 된 거다. 사실 남자도 그렇다. 옛날엔 여자가 살림만 잘 해주고 애 쑥쑥 낳아 잘 키워주는 사람이면 최고의 아내다 했을 것 아닌가? 지금은 날씬해서 S라인도 유지해야 하고 예뻐야 하고, 애를 낳고도 예뻐야 하고... 그런 것까지 다 요구하면서 또 정신적 위안처까지 돼 주길 원하지 않나.

그러니까 결혼이 옛날에는 그냥 뭐랄까, 제도적으로 결혼한 것 아닌가. 때 되면 당연히 하는 거고 당연히 후세를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하는 의무 사항. 지금은 개인의 선택 사항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요구가 점점 더 많아지는 거다.

결혼에 대한 기대는 하되, 환상은 갖지 말라는 게 내 조언이다. 환상을 크게 갖기 때문에 실망이 커지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투쟁이 싹트는 거다.(웃음)

문제는 점점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귀하게 커서 갈등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혼률도 높아지고. 그래서 사실, 내 지론으로는 인격적으로 성숙하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리고 인격이 성숙한 뒤에 애를 낳아야 한다. 그래야 애가 괴롭지 않다. 애한테 과도한 기대를 안 하게 되니까.

-인격적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여성의 경우 출산에 적정 시기가 있지 않나?

그게 옛날부터 말하는 '결혼의 적령기'란 거다. 옛날엔 애만 낳을 수 있으면 가지 않았나. 그러다가 여성들이 교육 받고 하면서 결혼 적령기가 우리 때는 스물 다섯, 이게 '데드 라인'이었다. 이걸 넘으면 올드미스 타이틀이 붙었다. 그런 여성이 직장에서 신경질을 좀 내면 ‘노처녀 히스테리’라고 했다.

-책에는 행복한 결혼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깨는 이야기가 많다.

반응이 독자마다 참 다르다. 책을 읽고 "결혼해도 괜찮겠구나, 재미있겠다"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 지지고 볶고 하는 장면에서 어떤 '에너지'를 느낀 사람 같다. 반면에 "결혼을 안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겠구나" 하는 사람도 있다. 주로 40대 후반 정도 비혼(非婚) 여성들 반응이 그랬다. 자신의 가임기가 끝나 간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갈등이 됐는데 이 책 읽고 나니 결혼을 굳이 안 해도 자기가 충만하게 살면 행복할 수 있겠다는 메시지를 얻어서 마음이 굉장히 편해졌다고 하더라.

-결국 보기 나름이라는 얘기네.

결혼 하지 않은 사람은 "아, 결혼이란 거 해도 괜찮겠네?"하는 반응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너무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아,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하고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게 결혼의 속성인지 모르겠다. "남편이 조금 덜 미워졌다"는 말도 하더라.(웃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결혼의 모습은 어떤 건가?

부부가 서로를 인격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관계가 좋다고 본다. 물론 자잘한 싸움은 있을 수 있다. 도인처럼 한쪽이 무조건 다른 쪽 의견에 맞춰줄 수는 없는 거니까. 서로를 키워줄 수 있는 관계를 이루는 게 좋다.

또 무엇보다 가치관이 같아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성공'의 의미를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 물질적으로 더 잘 사는 것에 두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배우자의 생각은 그와 다르면, 그 부부는 서로 다투거나 멸시하는 관계가 되고 만다. 그런 경우엔 이혼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로를 인격적으로 성숙시킬 수가 없는 거다.

-이상적인 배우자감이라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보다는 긍정적인 사람이 좋겠다. 비단 배우자감만이 아니라 친구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는 ‘꼬이지 않은’ 심성을 가진 사람. 이상하게 만사를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과 함께하면 좀 피곤해진다. 물론 그런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면 그건 할 수 없다. 사랑에 푹 빠지면 그렇게 꼬인 점이 매력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상적인 배우자’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런 사람은 너무 피곤해질 것 같다. 

무엇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 서로를 끊임없이 바꾸려는 부부는 피곤하다.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하니까. 잔소리라는 게 뭔가? 결국 당신을 내 뜻대로 하고 싶다는 얘기 아닌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 관계도 편안해진다.

또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꽉 막힌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밖에, 상대에게 모욕적인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상대의 재능을 아껴주는 사람. 더 키워주는 사람이라면 더 좋지만 그렇게 바라면 욕심이겠지.(웃음)

-책에 “결혼하기 전에 서로의 가치관을 알아볼 수 있는 끝장토론을 벌여보라”고 썼다.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주문이다.

그래도 서로 깊은 관계를 쌓고 대화를 해 보면 이 사람이 돈만 밝히는 속물인지, 혹은 현실 감각은 없이 너무 이상만 바라보는 사람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나?

-서로 가치관이 같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정반대' 수준은 아닌 애매한 경우는?

그 경우엔 애매하긴 하겠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정서적 교감이다. 만일 서로의 가치관이 아주 빗나가는 정도는 아니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그 정도 차이는 극복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햇볕 따사로운 어느 날. 사진 왼쪽부터 막내 동윤, 둘째 동준, 첫째 동훈/나무를 심는 사람들 제공

-결혼 전에 서로를 충분히 알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동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게, 좀 우습다. 사실 동거해도 서로를 잘 모른다고 한다.(웃음) 결혼 관계와 완전히 똑같은 상태가 아니라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관계 아닌가. 그러다 보니 결혼과는 다른 긴장 상태로 서로를 대하게 된다고 한다. 

결혼한 사람은 법적으로 서로 구속돼 있다. ‘이젠 잡아 놓은 물고기'라는 식의, 안심하는 게 있지 않나. 그런데 동거하는 사람들은 연애와 결혼 사이 에서 나오는 긴장 관계가 있어 다르다고 한다. 특히 동거라는 개념이 서양에 비해 생소한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동거한다고 해서 서로를 잘 알게 될 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본다.

-이혼이 갈수록 늘고 있다. 서로 안 맞으면 이혼이 정답이라고 보나, 그래도 참고 끝까지 살아내는 편이 좋다고 보나?

그것도 어느 정도 기준이 되는 선이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상대가 폭력을 쓰거나 외도를 했다거나. 옛날엔 이런 문제도 다들 참고 살았다. 요즘도 아마 참고 사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런 건 이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또 서로 가치관이 너무 다른 경우도 헤어지는 편이 낫다고 본다. 그 경우엔 부부 사이가 영원한 평행선이 되고 끊임없이 싸우게 될 거다.

-외도 이야길 해서 말인데, 간통죄가 폐지된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결혼이라는 게 배타적 성관계를 약속한 것 아닌가? 간통이란 그 약속을 깨는 일이니 나는 인정할 수가 없다. 

물론 미혼이나 비혼인 상황에서 자유롭게 연애하는 건 당연히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외도를 할 거면 왜 굳이 결혼을 해서 서약에 묶이나? 그냥 자유롭게 살지. 지금의 배우자와 정말 가치관이 달라서 못 사는 경우라고 치자. 그러면 이혼을 하고 정정당당하게 연애하면 되지 않나? 결혼을 서약한 사람이라면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부부 사이에 사생활은 어느 선까지 지켜주는 게 좋은가?

그 사생활이란 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비자금이라던가 그런 정도는 눈감아줘야 하지 않을까? 

모든 일을 꼭 부부가 '같이' 해야 한다는 건 안 좋은 것 같다. 같이 할 수도 있고 따로 할 수도 있고 그렇게 인정해 줘야지. 어떤 사람들은 상대를 구속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취미로 춤을 배운다고 치면 꼭 배우자와 함께 해야 한다고 고집하거나. 그런 건 좋지 않다. 서로의 취향을 인정해 줘야지.

-결혼 후 직장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불안해 하는 여성도 많다. 아들 부부는 맞벌이를 하나?

처음엔 각자 직장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다들 전업주부다. 그 중 한 명은 아이들이 좀 자라서 여유가 생겼다. 그간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새 일을 시작해 보려고 여러가지를 시도하고 있다. 

또 한 명은 아이를 낳고도 한동안 일을 했는데, 아이 몸이 약해서 최근 몇 년 동안 전업주부로 전환해 살고 있다. 또 한 명은 아이를 낳고도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완전히 직장인인 며느리는 없다. 저마다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도 본다. 

내가 여성학자이다 보니 며느리들이 고민 상담도 자주 하는 편이다. 나는 처음부터 애들에게 말했다. 인생은 굉장히 길다. 그러니 언제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고 했다. 

지금 애를 봐줄 사람이 없고 애가 아프다면 애를 키우는 거다. 만약 (경력 단절 후에) 옛날 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다른 일로 시작할 수 있다. 인생은 기니까. 물론 계속 아이만 키우면서 집에서 살림만 하고 싶다면 그것도 말리진 않는다. 하지만 아마 그건 아닐 거다. 뭐든 하고 싶다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결혼 생활에서 시댁이나 처가와의 관계도 고민거리다. 양가 부모 사이 균형은 어떻게 잡을지, 시댁이나 처가를 어느 정도로 가깝게 대해야 할지, 아니면 거리를 두고 예의를 갖춰야 할지.

그것도 똑같다. '따로 또 같이'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가족적인 행사, 생일 같은 자리에는 빠지면 안 된다. 한쪽 집에만 엉겨 붙는 것도 좋지 않다. 한 가족이라고 해도 세 집은 각각의 독립된 가정이란 생각을 해야 한다. 시댁은 시댁, 처가는 처가, 우리 가정은 우리 가정이다. 

-아들들이 며느리감을 처음 데려왔을 때 갈등은 없었나?

갈등이 있을 수가 없다. 나는 늘 아이들이 자랄 때에도 스스로 깨우치고 하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취업도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결혼하라, 말라 한 적이 없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아이들이 마흔까지 혼자 살아도 아마 닦달하지 않았을 거다. 그냥 물어볼 순 있겠지. “너는 결혼할 생각이 없니?”라고. 아마,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해도 그냥 “아, 그렇구나. 네 인생 열심히 헤쳐가라” 했을 거다. 왜냐, 나는 결혼을 한번 해봤으니까.(웃음)

그래서 나는 아이들이 며느리감을 데려왔을 때 참 신기했다. 어쩌면 이 세상 수많은 여자 중에 꼭 저한테 맞는 사람을 그렇게 데려왔나 싶어서. 첫째와 둘째 아들 부부는 서로 성향이 비슷한 부부다. 막내 아들 부부는 서로 부족한 면을 보완해줄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막내가 옷차림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데 며느리가 잘 다듬어주거나 하는 식으로. 그렇게 꼭 맞는 짝을 찾은 게 참 신기하다. 아들 셋도 다 다르니 며느리도 다 다르다. 그런데도 각 부부는 서로 어울리고.

지금 손자손녀가 여섯인데, 그 아이들도 저마다 다르다. 그렇게 다른 아이들을 서로 비교하면 안 된다. 손녀 가운데 참 여성스러운 손녀가 있고, 반대로 남자처럼 씩씩한 손녀도 있다.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 씩씩한 애한테 "넌 어쩜 여자애가 이렇게 남자 같냐, 저기 쟤는 얼마나 여성스럽니" 하거나, 여성스러운 애한테 "너는 어쩜 이렇게 소심하니, 쟤 좀 봐라 얼마나 씩씩하냐" 하는 식으로 다그치면 안된다.

-아이가 결혼 생활에서 주는 기쁨이 무엇보다 크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아이 없이 부부만의 행복을 찾겠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내 책은 정답을 주는 게 아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고 그냥 말해주는 책이다. 그런 건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만 내 경우는 아이에게 정성을 많이 줬고 부부 생활에서도 아이에게 가장 큰 비중을 뒀다. 아이가 태어난 뒤엔 아이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서 남편 미워할 시간이 줄어들 정도였다.(웃음) 그건 내 경우다.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아이가 부차적이고 부부 관계가 우선인 경우엔 자신들에게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인지 그 신조에 따라 살면 된다.

그보다 걱정은 아이를 정말 낳고 싶지만 어려움을 겪는 난임 부부다. 아이를 원하는 난임 부부에게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젊은 부부가 생활하기에도 빠듯한데, 시험관 아기 등 시술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든다. 

지금 저출산을 걱정하기보다, 그렇게 의지가 있는 부부에게는 몇 번이 되든 아이가 생길 때까지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게 맞지 않나? 아이 낳기 싫다는 사람들 설득하는 것보다 그 쪽이 빠를 거라 본다. 그리고 미혼모 아이들도 지원이 더 필요하다. 그 아이들이 다 우리의 자산이다.

-결혼 생활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태어난 뒤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는 여성이 많다.

그렇다. 핀란드처럼 복지가 잘된 나라는 세금을 어마어마하게 내지 않나. 최대 소득 60%까지 내는 걸 텐데. 우리나라는 그런 면에서 참 어려운 게, 지금 무상보육 이야기하자마자 '재정 부족'을 말하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서민 생활은 팍팍하다는데 무턱대고 복지 하자고 세금을 늘릴 수는 없는 상황 아닌가. 

내가 지금 공동 육아와 공동체 교육 이사장인데, 내 꿈이 ‘공동 육아’를 퍼뜨리는 것이다. 공동 육아란 아이 가진 부모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직접 운영해 나가는 어린이집이다. 5~10가구가 모이면 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 조합으로 모인 부모들이 직접 어린이집 터를 마련하고, 교사를 채용하고, 관리해 나간다. 어린이집을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운영해 나가니 안심할 수 있다.

1994년 처음 생겼고, 현재 전국에 66곳 정도 있다. 장점이 많지만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부 차원에서 좀 더 획기적으로 보육 시설의 질을 높이고, 안심하고 아이를 보육 시설에 맡길 수 있도록 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 여성의 출산이 늘어나긴 어려울 거다.

나는 아이 키우는 것처럼 신비하고 재미있는 일을 놓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라, 아이를 '제대로 키울 엄두가 안 나서'라는 이유를 드는 게 슬프다. 지금 현실이 아이 기르기 만만치 않은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론 아이 없는 인생이란 참 팍팍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부모의 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이는 부모의 힘이기도 하다. 지금은 짐으로만 여기는 면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말을 하면 우리 아들들은 나더러 '대책 없는 출산주의자'라며 질색을 한다.(웃음)

예를 들어 우리 막내 같은 경우도 그렇다. 며느리는 한 명 더 낳고 싶어하는데, 아들이 아이 셋 키울 정도로 돈 못 번다면서 질색을 한다. 나는 그런 소리 들으면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들여 키우려고 하느냐, 애들은 돈 들이지 않아도 잘 큰다"고 해준다.(웃음) 우리나라 엄마들이 아이 교육에 공을 참 많이 들이는데, 그렇게 돈 들여서 막 가르치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니다. 그렇게 안 가르쳐도 된다.(웃음)

▲온 가족이 잔디밭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큰 아들 동훈, 둘째 동준을 안고 있는 박혜란, 막내 동윤을 무릎 위에 앉힌 남편/나무를 심는 사람들 제공


-아들 세 명을 과외 한 번 없이 서울대에 보낸 엄마로 유명하지 않나. 대학 졸업 후에도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녀 교육은 어떻게 했나? (박씨의 맏아들 동훈은 현재 건축학과 교수, 둘째 동준은 가수 ‘이적’, 막내 동윤은 방송국 PD로 각각 활동 중이다.) 

그 전에 내가 쓴 책(‘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서도 이야기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참 우스운 게, 우리 아이들은 정말 잔소리도 안 듣고 알아서 컸다. 그런데 지금 와서 자기 아이들 키울 땐 왜 그렇게 돈 들이고 욕심 내는지 모르겠다. 아마 ‘엄마가 날 닦달해서 공부를 더 시켰으면 더 큰 인물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웃음) 하지만 내가 공부하라고 잔소리 했으면 우리 애들은 서울대 근처에도 못 갔을 거다.(웃음) 

자아가 강한 사람은 그런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혼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와선 "공부 열심히 하는구나, 더 열심히 해라" 하면 책 탁 덮고 "나 안해!" 하는 식이다. 오히려 반감이 생긴다.

지금도 자녀 교육법에 대한 강연을 자주 한다. 내 책에서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안 하고, 공부도 안 시켜도 잘 컸다고 다 썼는데도, 사람들은 책에 안 쓴 무슨 비법이 있을 거라 기대하고 찾아오는 거다. 나는 이렇게 말해준다. 당신이 그렇게 욕심을 낼수록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끌어가기는 힘들다고. 

그 대신 자기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아이에게 올인하지 말고, 당신도 앞으로 100세까지 살아야 할 사람이니까 당신 공부를 하라. 아이는 자연스럽게 잘 큰다, 그걸 믿으라고. 고마운 건 강연 자리에 가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와서 무슨 간증하듯 다른 청중을 설득한다. 첫 아이는 이것저것 정말 많이 시켰지만, 둘째는 이 분 책 본 뒤로 정말 아이가 하는 대로 두고 믿어줬더니 정말 잘 됐다고 하면서 제발, 이 말 믿으세요! 하더라. 내가 심어 놓은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웃음)

-‘자기 공부를 하라’고 했는데, 실제로 39세 나이에 여성학 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그 과정은 어땠나?

여성이 그 나이가 되면 한번쯤 자기 공부를 하거나 자기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도 어느 정도 자랐으니 내 삶을 찾으려는 욕구가 생긴다. 하지만 대부분 생각에 그치고 만다. 한 발짝을 더 못 내딛는 거다. 내 친구들만 해도 명문대를 나와서 그냥 가정 주부로 지내는 사람이 많다. 그런 친구들은 공부를 계속해서 앞서 있는 애들과 지금 자신이 비교가 돼서 바깥으로 잘 못 나간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교수가 돼있곤 한데, 자기는 이제야 다시 공부한다고 하기엔 자존심이 상해서. 

그렇게 비교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각자의 삶과 시계가 다른 것 아닌가. 그렇게 이상한 자존심을 세우다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게 참 안타깝다.

-그래도 세 아이의 엄마가 새로 공부를 시작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당시 아이들은 몇 살 정도 됐나?

우리 막내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 그 정도 되면 아이는 다 키웠다고 생각했지. 아이 목에 대문 열쇠를 목걸이로 만들어 걸어 주고.(웃음) 지금 생각하면 외국에선 아동 학대라고 했을 것 같긴 하다.(웃음)

-남편의 반대는 없었나?

내 결심이 바로 서고 나니까 남편 반대는 큰 장애물로 여겨지지 않았다. 여성학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작가를 해볼까, 법관이 될까, 보험 외판원이 될까. 아마 35세쯤 됐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내가 뭘 하고 살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날 내가 “작가가 돼 볼까?" 했더니, 남편이 "아니, 더운 물 찬물 잘 나오는 아파트에서 살면서 무슨 작가야, 작가는 삶의 고통을 다 알아야지"라고 해서 김을 확 빼놓았다. 

39세가 된 뒤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땐, 남편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내 인생인데 왜 남편에게 물어보나. 그래서 그냥 남편에게 "나 공부하러 간다"고 통보했다.
▲어깨동무하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부자의 굳은 표정이 꼭 닮았다. 사진 왼쪽은 큰 아들 동훈. /나무를 심는 사람들 제공

-그때 선택에 만족하나?

매우 만족한다. 공부를 결심한 것도, 여성학을 선택한 것도 모두 다. 여성학을 선택한 건 내가 그 전까지 살아왔던 틀을 깬 것이다. 난 내가 굉장히 주체적으로 산다고 생각해왔는데, 사실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그렇지 않나, 그 시절 여대가 아닌 서울대학교의 문화는 대단히 남성주의적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 ‘여자는 남자의 기형’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도 대학 다닐 때까지도 한번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결혼을 한 뒤 아이를 키울 때에도 나는 혼자 "이건 내가 선택한 삶이지, 난 시시한 여자가 아니야" 하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그런데 여성학을 제대로 공부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전까지 진리로 믿었던 것들이 남성적 시각에서 나온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됐다. 페미니즘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전과 너무나 달리 보였다. 여성으로서의 자부심도 느끼기 시작했다. 예전엔 아무리 해봐야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지, 하곤 했는데 이제는 안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는 거다.

이런 시각을 갖고 나니 오히려 남성을 보는 눈도 참 너그러워졌다. 전에는 남자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하는 식으로 바라봤는데 사실 그런 게 오히려 억압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을 성별에 의한 차이 없이 바라보는 거, 그게 페미니즘이다.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니 남자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너그러워지는 거다. 그러니 왜 꼭 남자만 돈을 잘 벌어와야 하나 하는 의문도 생겼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선택이 굉장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공부를 시작할 때에는 개인적 궁금증을 풀겠다는 생각만 했다. 남을 해방시킨다 이런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런데 내가 묵은 사고에서 해방되고 나니, 나도 다른 여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즘을 ‘비호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잘못된 거다. 페미니즘 초반에는 기존의 틀을 부수기 위해 아주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남성이라고 해서 해방된 사람이냐, 그걸 따져보면 아니다. 이제는 서로 같이 가야 한다는 거다. 

IS로 갔다는 김군이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고 했다는데, 참 가슴 아프다. 잘못 전달된 페미니즘을 접하고 그런 극단적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게 말이다. 왜 이렇게 잘못 생각하게 됐을까 싶었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성적인 면에 대한 해방만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는 아주 지엽적인 페미니스트다. 좀 극단으로 나간 사람들이다. 그게 취향에 맞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남성을 적으로 상정해 버리면 투쟁하기가 쉬울테니까 말이다. 얼마 전에도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 진행자들이 '아니 페미니즘이 그런 거였나?' 하고 물어보길래 오히려 내가 놀랐다. 이게 다 20년은 된 이야기인데 다들 너무 모른다.

-페미니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여성학계 최대 화두는 뭔가?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와 여성 일자리에 관한 얘기다. 과거와 똑같은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여전히 풀지 못한 묵은 문제다. 내가 젊은 시절부터 계속돼온 문제다.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모두 담당해야 하는 한, 그리고 보육 문제를 국가가 도와주지 않는 한 계속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여성 일자리 문제는, 고용 자체는 늘었어도 고용의 질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여전히 보수가 낮은 비정규직에 치우쳐 있다. 좀 더 좋은 일자리에 여성이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이 필요하다.



-책 뒷부분에 '결혼 정년제를 허하라'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세웠는데.

작년 멕시코에서 결혼 갱신제를 주장해서 화제가 됐다. 워낙 이혼률이 높고, 미혼모가 대를 이어 나오는 나라니까 아예 2년마다 결혼을 갱신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이 경우는 다소 극단적이다. 

우리나라는 상황이 좀 다르다. 만약 결혼 정년제가 있다면, 결혼 생활에도 약간의 긴장과 활력을 주지 않을까? 그 정년을 채워가는 동안 내가 상대에게 좋은 배우자로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도 하고, 노력도 하고. 만약 결혼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당하게 헤어지기도 하고.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결혼 정년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20년이 좋겠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너무 길다"고 볼멘소리를 하더라.(웃음) 뭐, 그게 길다면 10년 정도? 그러면 서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더 긴장하며 살지 않겠나. 여기에서 말하는 긴장이라는 게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긴장이 아니다. 서로에게 더 충실하고, 더 사랑하며 살자는 얘기다.

-이제는 주변 여성들로부터 받아온 질문을 좀 하겠다. "남편이 너무 미워서 밥 먹는 꼴도 보기 싫은데,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결혼 3년차 주부)

그런 말들 많이 한다. 미울 땐 남편 발 뒤꿈치도 보기 싫다는 말도 있지 않나.(웃음) 그럴 땐 '처음에 내가 왜 저 사람을 좋아했었나' 떠올려야 한다. 그렇다고 곧바로 그 사람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그런 시기를 겪는다. 뭐든지 다 미워 보이는 시기. 결혼을 하고 나면, 연애 때와 너무 달라진 모습에 크게 실망하는 거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괜찮다. 나만 특별히 이 사람과 안 맞거나 관계가 잘못돼 그런 게 아니란 얘기다. 그럴 땐 이 시기도 결국은 지나가는 거라는 점을 생각하고, 결혼 전에 좋았던 마음을 떠올려보는 거다. 내가 왜 저 사람을 좋아했던가, 그걸 떠올리면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러니까, 결국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의외로 그런 사람들 주변에 많다. 조건만 따져보고 대충 맞으면 쉽게 결혼을 결정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은 굉장히 위험한 선택을 한 거라고 본다.

-권태기를 버텨낼 추억마저 없으면 정말 위험하다는 얘기네.

그렇다. 그냥 조건만 따져서 한두 달 만에 후딱 결혼해 버린 경우에는 배우자가 미워졌을 때 되돌아갈 수 있는 둘만의 '기억'이 없다. 그래서 돈이나 조건만 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게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거다. 물질적인 건 결국 금방 익숙해진다. 그 사람과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좋은 건지, 사람이 고마운 건지 못 느끼게 된다. 결국 상대에게 원하게 되는 건 서로의 정서적 교감이다. 그게 아니면 뭐 하러 두 사람이 함께 살까.

-하지만 “사랑이 밥 먹여 주나, 따져보고 결혼하는 게 현명하다"는 말도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연애 감정이란 게 결혼 생활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연애를 하다가 그만둘 수는 있다. 하지만 오로지 조건이 나빠서 (서로 좋은데도) 결혼을 안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사랑이냐 돈이냐' 하는 말은 '이수일과 심순애' 시절 얘기다. 그 영화 내용을 아나? 이수일은 아주 가난한 남자다. 심순애는 이수일을 좋아하지만, 결국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김중배라는 갑부에게 시집을 간다. 거기에서 나오는 이수일의 대사가 이런 거다. "순애,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 탐이 났단 말이냐…."

그 시절엔 그랬다. "그래, 결혼은 현실이야" 하면서 그렇게 선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부간에 꼭 정서적 교감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의무로 살고, 법 때문에 살고, 집안 어른들 눈치 때문에 살고 이랬던 시절이다.

나는 특히 평균 수명 연장이 결혼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고 본다. 거칠게 말하면, 예전엔 남편이 밉다밉다 하더라도 버텨야 하는 시간이 짧았다. 남성은 50대를 넘어가면 죽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은 그보다 약간 더 오래 살았다. 

하지만 요즘은 백세 시대 아닌가. 남성은 90세, 여성은 100세까지 산다고 한다. 그러니 황혼 이혼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긴 시간을 버티기가 괴롭기 때문이다.

옛날엔 아이 때문에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기도 했다. 요즘은 아이도 적게 낳는다. 부부가 아이를 다 키운 뒤, 단 둘이 지내는 시간도 길어졌다. 예전 엔 부부가 단 둘이 지내는 시기가 10년이었다면, 지금 부부는 30~40년 수준이다. 그러니 버티기가 어려운 거다. 

그래서 나는 조건만 따져 결혼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길게 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속성이란 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수록, 경제적으로 풍족해질수록 정서적인 면에서 충족을 얻으려 하지 않나. 차라리 가난하면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느라 정서적 교감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다. 

결국 풍족해질수록 정말 의지할 수 있는 친구 같은 관계, 서로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점점 더 필요해지는 거다. 그러니 너무 '사랑이냐 돈이냐' 이런 식으로 따지다 보면 서로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또 다른 사람의 고민 상담이다. "연인이 일에 푹 빠지면 며칠씩 연락이 안되는 게 다반사입니다. 평소에도 굉장히 무심합니다. 그렇다고 대화를 해보면 나쁜 마음을 품었거나 저한테 마음이 떠나서 그런 건 아니라고 합니다. 진심도 느껴지고요. 그런 말에 설득당해 마음을 풀고 나면 또 연락이 끊겨서 속상한 일상이 반복됩니다. 결혼 상대로 괜찮을까요?"

정말 우리 생각엔 그렇다. 손가락이 부러진 것도 아닌데, 잠깐 짬이 날 때 연락 한마디 하면 될 문제다. 그런데 세상 사람은 참 다양하다. 일에 폭 빠지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내 막내 아들이 그런 타입이다. 일에 푹 빠지면 며칠씩 집에 안 들어가는 일이 예사다. 집중하면 전화는 당연히 안 받고, 문자 메시지에 답장도 안 한다. 그래서 며느리가 속상하다며 쫓아와서 하소연도 많이 했다. 그러면 난 "시간이 지나보면 다 달라져" 해줬다. 

타고난 인격이 완전히 바뀌는 건 아니지만, 아이가 생긴다거나 여러가지로 상황이 바뀌면 달라진다. 아예 이런 상황이 정반대로 바뀔 수도 있는 거고. 남편이 매일 부인 연락을 기다리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나도 책에서 남편 흉을 많이 봤는데, 그게 지나고 보면 큰 문제는 아니다. 며느리에게 "너네 시아버지보단 네 남편이 더 낫다"고 위로해 주기도 한다. 그러면 며느리가 "어휴, 어머니는 어떻게 사셨어요" 하는데, 뭐 살아지더라. 

그 사람이 그렇게 무심하게 행동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다'라는 믿음이 있어서 살아졌다. 가정 폭력이나 외도 같은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그래도 살아진다.

가장 중요한 건 주변의 다른 사람 사례와 비교하지 않는 거다. 사람마다 장단점이 다르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한 단면만 떼어내 비교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남편은 물론, 아이들도 절대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여전히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여성 혹은 남성에게 결론 삼아 조언한다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혼을 꼭 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싶은데, 여건 때문에, 혹은 조건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망설이는 사람에겐 “그렇게 결혼이 두려울 것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본인이 결혼에 대한 과도한 환상만 갖지 않으면, 얼마든지 즐겁게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 결혼 생활이라고 해주고 싶다.

혼자 살기를 선택한 분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먼 미래에 내가 혹시 후회하지 않을까 불안해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불안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결국 행복이란 자기 자신이 만들어 가는 거다. 결국엔 굉장히 교훈적인 얘기가 돼 버렸네.(웃음)



◆박혜란
1946년 수원 생. 서울대 독어독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8~1974년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그 뒤 10년 동안 주부로 지내며 세 아이를 돌봤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1984년 '애들은 다 키웠다'며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여성학 공부를 시작했다. 1993년 6월부터 1994년까지 연변대학 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금은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원,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삶의 여성학' '남성을 위한 여성학'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등이 있다. 

◆책 속으로
박혜란 지음|윤정주 그림|나무를 심는 사람들|231쪽|1만3800원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맛볼 만큼 맛봤겠지만 결혼하고 맛보는 단맛과 쓴맛과는 많이 다를 거라고 짐작한다.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격과 습관을 가진 두 사람이 좁아터진 한 공간에서 밤낮으로 부대끼며 산다는 것, 그러면서 상대방의 가족과 친지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 간다는 것, 아이들의 미래를 설계해 줘야 한다는 것 등은 결혼하지 않으면 닥치지 않을 과제들이다. (...) 참고 기다리고 적응하는 노력, 즉 나를 죽여야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결혼 전에는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되지만 결혼 후에는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수시로 생긴다."
/'결혼해서 좋은 게 고작 아이 낳은 거라고?' 중에서

"인생에는 공짜도 없고 헛수고도 없다. 부부 싸움도 자꾸 하다 보면 나름대로 도가 트는 것 같다. 싸우긴 하되 바닥까지 내려가진 않고 적당한 선에서 휴전을 선포할 줄 알게 된다. 나이 덕분인지 싸우고 나서도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것도 큰 소득이다. 이 나이까지 싸우면서 사는 내가 한심하다가도 그나마 싸우면서 살았으니까 이만큼이라도 산 게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사소한 일로 자꾸 싸워야 큰 싸움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더 사이좋게 살기 위해 난 오늘도 싸운다."
/'사소한 일로 싸워야 큰 싸움을 피할 수 있다' 중에서

"문제는 결혼 이후 쭉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각자 사느라고 바빠 '꼭 필요한 용건'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던 거다. 대화는 아이들 다 키우고 나서 좀 한가해질 때 실컷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정작 나이 들어 한가해지니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 또 대화는 어떻게 나눠야 하는 건지 주제와 기술을 몽땅 잊어버렸다. 무슨 일이든지 미루지 말고 '지금 여기서' 해야 한다."
/'아이들 다 키우고 나서 실컷 하면 된다고?' 중에서

"결혼은 두 외계인의 차이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일지 모르겠다. 처음에 '우리는 하나'라고 굳게 믿다가 수없는 갈등을 거쳐 드디어 '우리는 둘'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 차이에 비하면 배경이나 성격, 습관, 취미의 차이쯤은 극히 사소한 차이인 것 같다." 
/'성격, 취미, 습관이 너무 다르다고?' 중에서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라는 말이 오히려 불에 기름으로 작용할 때는 또 얼마나 많은가. '알긴 뭘 알아?' '아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해?'라는 힐난을 당하면 '잘못했다는데 웬 꼬투리냐?'로 이어지는 끝없는 말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사이가 좋을 때 미리 약속을 해 두면 어떨까. 누구라도 먼저 화해를 위한 '작은 표현'을 할 경우 상대는 무조건 받아들일 것을. " 
/'먼저 화해하기엔 자존심이 상한다고?' 중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의 기억력에 깜짝깜짝 놀란다. 결혼한 지 몇십 년이 지난 뒤에도 느닷없이 연애시절 섭섭하게 했던 일들을 들춰내 공격하기 일쑤다. (...) 남자들이 생각하듯 여자가 호시탐탐 남자가 잘못할 때만을 노리면서 사는 것도 아니고 남자 공격하는 맛으로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자도 좋았던 일, 행복했던 일만을 기억하면서 살고 싶은 로맨틱한 인간인데 말이다. 아마도 남자들이 훨씬 자주 책잡힐 일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보단 상대방에 대한 의존도가 여자 쪽이 훨씬 높아서 그런 게 아닐까. 대개의 경우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자신이나 자신의 일보다 남편에게 더 신경을 쓴다. 세계의 중심축이 이동하는 것이다. 반면 남편은 결혼을 했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젠 연애 시기의 그 골치 아픈 밀당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적인 안정감 덕분에 자신의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작은 싸움이 늘 큰 싸움으로 번진다고?' 중에서

"혼자 살 능력이 없으면 딴생각하지 말고 결혼해야 한다는 조언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심히 불쾌한 위협이다. 남성에 대한 경제적 의존성을 확인시킴으로써 여성의 정서적 독립성까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은밀한 의도가 느껴지는 한편으로 남성에게는 '닥치고 돈'이라는 무자비한 지상명령을 내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을 자유를 허용하라, 여성에게, 그리고 남성에게. 단지 돈 때문에 결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올 때 결혼은 진정으로 선택사항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에만 결혼 안에 진정한 사랑이 꽃필 수 있을 것이다."
/'돈 없으면 혼자 살 수도 없나?' 중에서

"모든 커플은 누구나 오래도록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행복하게 해로하기를 꿈꾼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두 사람이 처음부터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 것 같다. 꼭 함께 붙어있어야만 안심이 되고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부부들을 원앙이라고 부르는데 과연 맞는 말일까. 혹시 상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해서 그러거나 독립적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에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 진정으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부부라면 잠시 떨어져 있더라도 불안하지 않을 것 같다.(...) 결혼해서도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누가 결혼을 구속이라고 할까."
/'가끔은 따로' 중에서

"결혼을 안 하고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은 한참 부족하지만, 그리고 결혼 안 하고 살아도 또 새로운 종류의 불평불만거리들을 끄집어내 내가 왜 결혼 안 했을까 백만 가지 넋두리를 늘어놓을 게 거의 확실하지만, 아무튼 이번 생은 결혼해 봤으니 그걸로 충분하고 다음 생은 한 번 결혼 안 하고 살아 보고 싶다. 그래야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결혼이 뭔지, 인생이 뭔지, 행복이 뭔지 그나마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결혼해서 살아 보기도 하고, 결혼 안 하고 살아도 봐야 세 번째 생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모든 것을 알고 선택했는데 그래도 후회하면 어쩌지. 차라리 이번처럼 그냥 모르고 하는 게 훨씬 나은 건가."
/'다시 태어나는데 왜 결혼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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