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19, 2014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빙글’(Vingle)

2100억에 회사 매각하고도 쉴 틈 없다, 문지원 호창성 부부가 사는 법

입력 2014-10-20 오전 12:15:00
수정 2014-10-20 오전 11:47:30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빙글’의 문지원(왼쪽)·호창성 공동대표. 빙글은 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한국 기업으로 꼽힌다. 오종택 기자


국내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더 인정받는 스타트업(신생 창업기업)이 있다. 국내외 정보기술(IT)업계에서 ‘스타’ 창업가 커플로 유명한 문지원(39·여)·호창성(40) 부부가 만든 관심사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빙글’(Vingle)이다.

 빙글은 지난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스타트업 컨퍼런스 ‘비글로벌(beGLOBAL)2014’에서 실리콘밸리 벤처투자가들이 뽑은 가장 유망한 기업 1위에 올랐다. ‘한국의 차세대 유니콘’이라는 평가다. 기업 가치가 10억달러(1조655억원) 이상에 이르는 스타트업을 일컫는 ‘유니콘 클럽(Unicorn Club)’에 들어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한국 스타트업이란 얘기다. 페이스북·링크드인·트위터·그루폰 등이 대표적인 유니콘 클럽 멤버다.

 빙글을 만든 문·호 공동대표를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일 얘기를 할 수 있어 좋다”, “나의 최고의 멘토는 당신”라고 말하는 이들은 20년 구력의 창업 파트너십을 자랑하는 부부다. 미국 실리콘밸리·싱가포르·서울을 오가며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해 본 ‘글로벌 창업’ 1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미국 유학 시절이던 2007년 창업한 동영상 자막서비스 ‘비키’(viki)를 지난해 일본의 전자상거래업체 라쿠텐에 2억 달러(2100억원)에 매각해 화제가 됐다.

 문·호 공동대표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살다보니 창업에 뛰어들었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끝 모를 호기심과 자신감은 대기업 취업 아닌 창업을, 실패후에도 재창업을, 한국 대신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선택하는 힘이었다.

이화여대 94학번(문지원,특수교육), 서울대 93학번(호창성,전자공학)인 이들은 2000년 벤처붐의 끝자락을 타고 첫 창업에 도전했다. 3D(3차원) 아바타를 만들어주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3년 만에 1억원 이상의 빚만 남았다. 이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창업의 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문 대표는 “실패했지만, 우리는 다시 새로운 꿈을 꿨다”며 “당시만 해도 노점이나 동네 분식점 영역이라고 여겼던 떡볶이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해볼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먼저 움직인 쪽은 아내인 문 대표였다. 창업 준비를 위해 공부를 더 해보겠다며 하버드 유학을 떠났다. 이후, 호 대표도 스탠퍼드대 경영학석사(MBA)를 택했다. 호 대표는 “한국에서 온 미국 MBA 유학생들이 경력전환을 위해 금융이나 마케팅을 전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창업을 목표로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창업 6년만에 성공적으로 엑시트(투자금 회수)한 비키는 문 대표의 아이디어와 실리콘밸리의 창업 환경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문 대표는 “영어에 한 맺힌 유학생들을 보면서 ‘언어장벽을 없앨 방법이 뭐 없을까’ 생각하며 기획서를 썼는데, 호 대표의 스탠포드 창업 클래스를 통해 투자자를 만났다”고 소개했다. 비키는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동영상 언어를 번역해 다양한 언어로 자막을 붙여주는 서비스다. 전세계 뮤직비디오나 애니메이션을 아무런 대가없이 자국어로 번역해서 비키에 올리는 이용자들이 160여개국에 퍼져 있다. 인도 드라마를 스웨덴 사람들이 비키를 통해 스웨덴어로 즐길 수 있게 됐다. 지금도 매달 2000만명 이상이 비키를 이용한다. 비키가 공식 판권을 구입해 저작권 문제도 없다.

 부부는 비키가 안정적인 단계에 접어들자 다시 창업 카드를 들었다. 2011년 서울에서 ‘빙글’을 창업한 것. 비키의 시즌2를 만들어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문 대표는 “비키를 통해 커뮤니티의 파워, 집단지성이 주는 혁신의 힘을 경험했다”며 “돈 버는 일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동영상을 번역해 공유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다른 분야로 확장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빙글은 비슷한 취미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관심사에 관한 정보나 의견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기존 오프라인 인맥이나 유명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SNS보다 관계도, 정보도 더 깊다. 매달 조회되는 페이지수(페이지뷰)가 지난 5월 1억건을 돌파했다. 이용자의 40%는 미국·유럽·중남미·아시아 각국에 있다. 빙글이 인맥SNS 다음을 이어갈 SNS라고 기대를 받는 이유다.

 최근 성장 속도도 가파르다. 2012년 7월 서비스를 시작해 지난해 8월 100만명이던 월간 순방문자 수가 올해 4월 200만 명, 지난 8월엔 400만 명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 사용자가 매달 두 배 이상 늘어나는 등 영어권 시장에서 급성장 중이다.

 너도나도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최근의 흐름에 대해 두 사람은 “글로벌 인재가 있어야 글로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비키가 그랬다. 비키의 본사는 실리콘밸리에 있었지만, 직원의 75%가 일하는 연구개발센터는 싱가포르에 뒀다. 미국과 아시아의 글로벌 인재를 효과적으로 영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빙글’의 베이스캠프는 서울이다. 왜 서울을 택했을까. 문 대표는 “우리의 경험을 한국의 스타트업들과 나누고, 함께 더 크게 성장하고 싶은 마음에 돌아왔다”며 “서울에 있더라도 직원들이 문화나 언어 장벽 없이 코스모폴리탄의 가치를 공유한다면 글로벌 서비스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요즘 빙글은 미국 사무실에 있던 직원 30여명을 서울로 불러모아 함께 일하고 있다. 조직문화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호 대표는 또 “반에서 1등, 전교에서 1등하려고 노력해봐야 세계에서 보면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라며 “처음부터 페이스북·트위터같은 세계의 경쟁자들과 겨뤄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를 이끌어내고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빙글은 올해 4월 삼성전자에서 4년간 기업 인수·합병(M&A)을 담당했던 마크 테토를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올해초 또하나 일을 벌였다. 벤처캐피탈(VC) ‘더벤처스’를 설립한 것이다. 호 대표는 “우리가 만약 첫 창업 때 제대로 멘토링을 받았다면 시행착오를 크게 줄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항상 컸다”고 말했다. 특히, 문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유학생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와이프들조차 모여서 ‘뭐든 만들어보자’고 나서게 할 만큼, 거기서는 누구나 창업을 하지 않으면 도태될 듯한 분위기”라며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막연한 아이디어만으로 창업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창업을 하는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더벤처스는 한국의 스타트업들에게 뛰어난 아이디어를 좀더 조직화해 글로벌 서비스로 키우는 조력자 역할을 할 예정이다.

 문 대표는 “한국의 IT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도록 그럴만한 기업을 발굴해서 키우고 싶다”며 “한국이 잘하는 게 많은데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부분이 많기에, 이런 아쉬움을 우리가 풀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박수련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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