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20, 2015

미국 양키캔들, 향초 하나로 연 1조원 넘게 벌어 

입력 2015-03-21 오전 12:10:33
수정 2015-03-21 오전 12:19:00
[중앙포토]

향기가 돈 되는 시대다. 과거 선진국 위주였던 ‘향기 시장’은 이제 아시아에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향기 소비’는 사치가 아닌 일상이 되는 추세다. 방향제·향초 등은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 사회에서 향기로 심신을 치유하려는 소비자들의 수요도 향기 시장 성장에 한몫하고 있다.

 향(香)과 맛을 결정하고 향기를 내는 데 쓰이는 원료인 향료 시장도 이에 맞게 커지고 있다. 향료 산업은 음식료·향수·세제 등 응용 범위가 넓고, 정밀 화학 기술을 요구하는 특성상 미래에는 반도체 못지않은 ‘산업의 쌀’ 역할을 해줄 분야로 기대된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향료(식품 및 화장품 향료) 시장은 올해 266억 달러(약 30조원)에서 2019년에는 355억 달러(40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일부 연구기관에서는 연 400억 달러(45조원) 시장을 내다보기도 한다.

 향료 시장의 전통 강호는 스위스 기업이다. 세계 1~2위 향료 업체는 스위스 기업인 ‘지보단’과 ‘피르메니히’로 두 기업 모두 1895년에 세워졌다. 지보단은 랄프 로렌의 향수를 개발한 세계 1위 향료 업체다. 피르메니히는 소속 연구원 레오폴트 루지치카가 1939년 노벨 화학상을 받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딸기향과 시트러스향(감귤향)을 상업화한 기업이기도 하다. 이 두 곳의 시장 점유율을 합하면 34.4%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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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료 시장은 스위스·미국·일본의 5대 기업이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과점하고 있다. 최근 중국 기업이 선진국 위주의 향료 시장을 파고드는 모양새다. 중화권 기업인 화바오(華寶)가 대표적이다. 2013년 기준 세계 향료시장에서 화바오는 1.7%의 점유율을 올리며 12위가 됐다. 화바오 그룹은 주식 시가총액 기준 중국 최대 향료 회사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며 담배·음식물·생활용품에 골고루 쓰이는 인공 향료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덕에 화바오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중국 소비자들이 향기에 돈을 쓰기 시작하면서 주린야오(朱林瑤) 화바오 회장도 자산가로 등극했다.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胡潤)연구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주린야오 회장은 자산 165억 위안(약 2조9000억원)을 보유해 중국 여성 사업가 중 8위를 기록했다.

 향료 제품의 선두주자는 프록터앤갬블(P&G)에서 출시한 탈취제 페브리즈다. 미국에서 1990년대 출시된 페브리즈는 한국에도 회식 후 옷에 냄새가 배지 않게 탈취제를 쓰는 ‘탈취 문화’를 확산시켰다. 페브리즈 에어 프레셔너는 2011년 매출 10억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페브리즈 제품 하나로 1조원을 웃도는 돈을 번 것이다.

 불을 붙이면 향이 퍼지는 향초 시장도 성장세다. 대표적인 기업은 향초 하나로 연 매출 1조원을 올리는 미국 향초 시장 1위(시장점유율 47%) 양키캔들이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20%대에 이른다. 국내 100대 상장기업의 영업이익률(5.3%)의 4배 수준이다. 양키캔들은 국내에 2007년 진출해 14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향기를 창조하는 조향사 역시 향기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뛰어난 조향사의 경우 ‘스타 디자이너’ 못잖은 대우를 받는다. 세계 향수 대회에서 향수를 출품해 우승하는 조향팀은 향수 기업으로부터 성공 보수를 3억8300만~6억4000만 엔(약 36억~60억원)까지 받기도 한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의 자회사 아사히글로벌이 보도했다. 인기 향수 하나를 만들어내면 그 뒤로는 앉아서 돈을 버는 셈이기 때문에 기업도 넉넉한 성공 보수를 준다.

 특히 향수는 생산비용이 판매가의 20% 정도에 불과한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향수를 만들면 엄청난 돈을 번다. 샤넬 넘버5처럼 ‘궁극의 향기’를 꿈꾸는 향수 신제품들이 매년 쏟아지는 이유다. 1993년만 해도 향수 신제품은 세계적으로 132종이 출시됐지만 2013년 기준 연간 1492종의 새 향수가 나온다. 향기 산업이 번창하는 까닭은 일상에서 바르고 먹는 웬만한 제품에는 향료가 쓰이기 때문이다. 향기 산업은 실버 산업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남녀 불문하고 40세 이상이 되면 나는 ‘가령취(加齡臭)’를 없애기 위해서다. 가령취는 나이가 들면 절로 나는 노년 특유의 체취를 의미한다. 2000년 일본 화장품업체 시세이도 연구센터에서 처음 발표한 가령취는 불포화알데히드의 일종인 노네날 성분 때문에 나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높을수록 가령취가 더 심하다는 설명도 있다. 아사히글로벌은 “일본에선 자신에게서 가령취가 날까 봐 걱정하는 사람도 상당하다”며 보디 샴푸나 냄새를 없애주는 내복·침구 등 관련 상품 수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변화하는 사회상도 향기 산업에는 기회다. 양키캔들 도곡점 관계자는 “가정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늘면서 애완동물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초를 사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향기 마케팅도 있다. 대형 식품업체에서는 향기를 판촉 도구로 적극 활용한다. 후각은 오감 중에 유일하게 뇌 속의 명령계통을 직접 자극해 충동구매를 일으키기 쉽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미국에서는 ‘향기 소개팅’이 실험적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셔츠나 소지품을 내놓고 얼굴은 보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향기’를 지닌 상대방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도 향기 시장은 성장세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탈취·향균·방향제 등 국내 향기 제품 시장 규모는 연 2조5000억원으로 매년 10%에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향기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향기를 내는 데 쓰이는 향료는 한국산을 찾기 어렵다. 향료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수입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국 향료공업협회 전승배 부장은 “과일·허브 등 원재료를 가공해 정제하는 기술은 정밀 화학 역사가 오랜 기간 발전해 온 유럽이 강하다”며 “한국에는 중국처럼 원재료가 풍부하지 않지만 대신 기술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에는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 BOX] 추억의 ‘걸스카우트 쿠키 향’에서 으스스한 ‘좀비 향’까지

향수의 세계는 넓다. 맛있는 음식을 향으로 즐긴다면 어떨까. 양키캔들은 미국 걸스카우트와 협력해 ‘걸스카우트 쿠키 향’을 개발했다. 어린 시절 갓 구운 쿠키를 팔러 다니던 걸스카우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향이다. 먹는 것을 향으로 개발한 예는 베이컨·맥주·피자향 등이 있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찾기도 한다. 산장(山莊)향, 공원에서 소풍 때 맡은 향기, 가을 낙엽향, 빛나는 눈(雪) 향기, 태풍이 오기 직전 습한 공기의 내음 등 다양한 향초가 있다. 군대에서 위장할 때 바르는 크림을 연상케 하는 카무플라주 향까지 나와 있다.

 기발하고 엽기적인 향수도 있다. 갓 인쇄된 신권의 향기가 난다는 ‘머니 퍼퓸(Money perfume)’도 있다. 돈 냄새를 제대로 맡으려면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하다. 데메테르는 숲속을 거니는 느낌이 난다는 ‘좀비 포 맨’을 출시했다. 향수병 겉에 부착된 좀비가 으스스한 느낌을 준다. 영국의 괴짜 예술가 제이미 니컬러스는 자신의 소변으로 수년간 향수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먹는 음식에 따라 향이 달라진다”며 “꿀을 먹으면 달콤한 향이 난다”고 주장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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