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1, 2014

마늘로 만든 친환경 접착제로 세계인의 시선을 끌다


입력 : 2014.07.24 15:48 | 수정 : 2014.07.27 07:09

 사진=김선아
 사진=김선아
경남 진주에 자리 잡고 있는 제이알은 마늘 특유의 진액 성분을 이용해 접착제를 만든다. 창업한 지 4년, 제품을 본격 시판한 지 2년이 채 안 된 신생 기업이지만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이다. 국내·외 특허만 55건에 이르고, 세계 각국에서 원료 물질 구매 문의가 줄을 잇는다.  

마늘 접착제를 개발한 사람은 창업자인 이진화 대표. 2002년 경남과학기술대 대학원 가구소재연구실에서 화학 접착제를 연구하던 그는 당시 ‘새집증후군’이 사회적인 관심사로 떠오르자 자신의 연구 분야와는 정반대에 있는 친환경 접착제에 관심을 두었다.   

이미 전분계·단백질계 접착제가 친환경 제품으로 개발돼 시장에 나오기는 했지만 보존 기간이 짧아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의견을 들은 지도교수도 “천연 물질만으로 접착제를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시장 가능성을 확신한 그는 지도교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존 접착제를 대체할 물질을 찾기 시작했다. 

“그 무렵 학교에서 열린 창업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옆자리에 앉은 어르신에게 마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분이 ‘마늘을 건강식품으로 만드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며 ‘마늘을 구울 때 진액이 나오는데, 그게 굳으면 쇠도 안 떨어질 정도로 점성이 강하다’고 하더라고요.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저는 안 풀리는 시험문제의 답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그는 곧 마늘을 연구했다. 진주는 우리나라 마늘의 주산지인 남해와 가까워 연구 환경도 좋았다. 마침 지역 R&D 산업 육성을 위해 경남테크노파크가 시행한 사업에 선정돼 연구 지원을 받았다. 그렇게 2006년부터 시작한 연구는 2년 6개월가량의 개발 기간을 거쳐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마늘 접착제는 접착 강도가 일반 화학접착제에 뒤지지 않고, 유해성분은 없다’는 공인 실험기관의 결과도 얻었다. 무엇보다 마늘 특유의 항균력 덕분에 화학적인 방부 처리를 하지 않아도 수년간 보관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혔다. 그는 제품 개발과 함께 특허를 냈고, 개발 과정을 석사학위 논문으로 썼다.       

내친김에 창업에도 도전했다. 2009년 12월, 학교 창업보육센터의 지원을 받아 1인 기업으로 문을 열었다. 제조업이라 생산 시설이 꼭 필요했던 그에게 또 한 번의 행운이 찾아왔다. 진주시가 새롭게 조성한 바이오산업단지를 분양 받은 것.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에게 투자를 받고 대출을 받아 공장을 지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이라 생산 설비를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실험실에서 소량은 잘 만들어지던 접착제가 대량생산에 들어가자 불량품이 속출하는 위기도 겪었다. 

“사업은 연구와 또 다른 분야라 무척 힘들었어요. 공장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본격적인 영업은 2012년 말 시작했지요. 접착제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새집증후군’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바닥재, 벽지 등에 쓰는 인테리어 시공용 풀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생각만큼 부가가치가 높지 않아 문구용 풀을 출시했는데, 이게 요즘 저희 회사의 효자상품이에요. 92%가 마늘에서 추출한 성분이고, 나머지 8%도 식품첨가물이라 먹어도 될 만큼 안전하거든요. 한창 풀을 쓸 일이 많은 아이들에게 특히 좋은 제품이죠.” 

 사진=김선아
 사진=김선아
‘2013 카르티에 여성 창업 어워드’에 
아시아 대표로 참가
접착제는 현대사회에서 그 쓰임새가 폭넓다. 그만큼 접착제에 포함된 유해물질에 대한 규제도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다. 가령 일회용 밴드에 있는 접착 성분은 미국FDA나 유럽에서 암과 각종 피부 질환을 일으키는 물질로 규정해 사용을 금지했다.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속눈썹 연장술에 사용되는 접착제는 종종 안구 질환을 일으켜 문제가 되고 있다. 색조 화장품에도 대부분 접착제 성분이 들어간다. 올 들어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들이 제이알에 잇따라 샘플을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방에 있는 작은 신생업체에 이들 기업의 문의가 몰린 이유를 묻자 그는 “화장품 브랜드들이 기존 물질을 대체하기 위한 친환경 성분을 찾다 이 분야 특허를 보유한 우리 회사를 알게 되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국내 굴지의 페인트 업체도 유해 물질에 대한 심사가 까다로운 외국시장 진출을 준비하며 제이알과 협업을 논의 중이다. 

마늘 접착제가 단순한 발명품이 아니라 세계 접착제 시장의 판도를 흔들 만한 신소재로 떠올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이 획기적인 제품으로 2012년 한국여성발명협회와 특허청으로부터 ‘올해의 여성 발명·기업인상’을 받았다. 작년에는 프랑스에서 열린 ‘카르티에 여성 창업 어워드(Cartier Woman’s initiative Awards)’에 아시아 지역 대표로 참가하는 영광도 안았다. 카르티에 여성 창업 어워드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카르티에가 여성 창업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대회로 우승자에게는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우승은 못 했지만 멋진 경험이었어요. 전 세계 영향력 있는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포럼도 있었고, 서로 교류하고 정보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 다른 참가자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어요. 특히 마늘 향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을 점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외국인들이 마늘 향을 싫어한다고 해서 걱정했거든요. 저희 제품은 장미, 복숭아 같은 향을 조금 섞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늘 향이 남아 있어요. 마늘 냄새를 잡기 위해 화학물질을 쓸 수는 없고,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대부분 ‘마늘 향은 접착제 특유의 화학성분이 내는 역한 냄새와는 다르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 말에 용기를 얻었어요.”

그는 마늘 접착제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올해부터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에 나섰다. 1주일에 서너 차례 서울과 수도권, 진주를 오가는 강행군을 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해 실의에 빠져 있던 차에 최근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미국의 한 투자기관이 상품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제안한 것이다. “현재 미국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그는 “이를 발판으로 미국시장에도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사무소를 만드는 일도 염두에 두고 있다. 진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원까지 마치고 ‘당연히’ 진주에 자리 잡았지만 영업에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서울과 수도권 업체들의 경우 샘플을 보고 싶은데 너무 멀어서 못 가겠다고 불평하고, 제이알의 제품에 관심을 보인 업체들도 본사가 진주라고 하면 대부분 난감해하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 공장을 짓는다는 건 생각도 못 했어요. 지금은 주로 중국산 마늘을 사용하지만 처음에는 남해의 마늘을 썼기 때문에 원료를 수급하기도 좋았고요. 그런데 거래 업체들이 진주를 심리적으로 너무 멀게 느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홍보·마케팅 전문 인력도 충원해야 하는 등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그는 거침이 없다. 사람들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고 자연에 이로운 좋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제품력 하나로 시작한 1인 기업이 ‘작지만 강한 글로벌 기업’의 꿈을 이룰 날을 기대한다. 지금 보여주고 있는 제이알의 가파른 성장세가 그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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