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재능 뛰어난 미국 고등학생들 음대 안 가는 이유
얼마 전 미국 컬럼비아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의 학생 오케스트라 연주회 프로그램에 말러의 교향곡이 포함된 것을 봤다. 이런 대작은 개인의 연주실력으로는 세계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상위권 음악대학에서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음악대학도 아닌 일반 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이 곡을 연주한다는 것이다.
들어 보니 연주수준도 정말 높았다. 워싱턴 지역에서 100년 이상된 ‘프라이데이 모닝 뮤직 클럽(Friday Morning Music Club)’의 청소년 콩쿠르 디렉터인 한인 피아니스트 최정선 씨는 중고등 학생들의 콩쿠르를 보면 우수 입상자들의 대부분 음악학교 진학보다 일반학교 진학을 생각하고 있다고 알려줬다.
필자는 그들의 연주 실력이 상당하기에 당연히 음악을 전공하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이려니 했는데, 그분의 말씀은 의외였다. 미국의 아이비 대학 입학사정에서 운동이나 음악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가 있어서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관심사가 음악이기 때문에 진정성을 가지고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학생들은 물론 음악 전문가들에게 레슨을 받지만, 전통적 음악 교육과정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레파토리 선택이나 연주를 할 때 훨씬 더 자신 있고 과감한 접근을 한다.
이들이 대학에 가면 본인의 전공 공부를 하면서도 마치 음악인처럼 많은 연주활동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올 여름 우리나라에 와서 연주를 할 예정인 예일 대학의 아카펠라 앙상블 ‘Whippenpoofs’는 대학교 4학년생들로 이루어졌다. 이 앙상블의 멤버로 뽑히기도 힘들고, 뽑히면 14명의 멤버가 휴학을 하고 1년 동안 전 세계 연주를 다닌다고 한다. 특별한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본인들이 직접 이곳저곳 연락을 취해 직접 연주회를 만들고, 제안서를 만들어 여행경비도 충당한다. 연주 여행 도중 돈이 부족할 땐 한 방에 모두 모여서 자는 등 열정적으로 활동한다.
곧 졸업을 하고 직업을 가져야 할 음악전공도 아닌 4학년 학생들이 이렇게 당장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처럼 보일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런 활동이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경험이 되겠는가. 단순히 음악 연주만이 아닌 전체 과정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공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의 연주활동은 실력을 더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스스로의 의지로 음악을 하기 때문에, 음악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오히려 대단한 자신감을 키운다.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다.
대학에서 전공이 다양한 이들 음악가들은 다양한 실험을 한다. 어떤 학생은 분자생물학을 공부 하면서, 화학기호 하나하나에 음 하나씩을 매치시키면서 새로운 곡을 만들어 본다.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연주회에서 시 한수, 음악 한프레이즈를 번갈아 연주한다. 물리학을 전공한 어떤 피아니스트는 클래식을 주로 연주하지만, 가끔은 상당히 철학적인 내용의 에세이를 랩으로 풀어 노래한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한 친구는 ‘바흐 소사이어티’를 결성해 대학생활과 석사공부 내내 수십 차례 연주회를 직접 만들었다.
반면 오랫동안 음악전문기관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음악교육기관이 주는 압도적 권위로 인해 선생과 기관, 그리고 음악가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자신이 음악계에 속해있다는 자부심과 소속감은 느끼겠으나 스스로 전통의 바깥에서 진정한 자신감을 키울 기회는 별로 없어 보인다.
전통을 이어 받고 장인이 되어가는 학업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파괴되지 않고 지켜진 근본적인 호기심과 그 호기심이 가져다 주는 주인의식에서 비롯된 시도, 그리고 창의적 발상 등은 필자가 전통적 ‘콘서바토리’ 혹은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음악대학생들에 대해서, 시간도 없는데 인문교과목의 공부를 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제시됐었다. 연습만 하기에도 벅차다는 의견과 함께 말이다. 소수 학생에겐 일리가 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음악가들에게도 충분히 균형 잡힌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훌륭한 음악가들은 사실 상당한 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함께 공부할 수도 있다. 이는 오히려 음악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필자가 대학에 있는 동안 앞으로 가장 중요하게 추구하려는 일이다.
정식음악공부를 하지 않았는데도 감동을 주는 TV경연대회 스타들, 혼자 악기를 배워 아프리카 아이들과 밴드를 만들었던 고 이태석 신부님, 음대를 나오지 않았다고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구분되지만 정말 훌륭한 연주자들에게서 필자는 무한한 가능성과 흥분을 느낀다. 이들은 순수하고도 순진한 자신감 덕분에 무서워하지 않고 연주를 하고 많은 시도들을 한다. 그리고 음악이 다른 분야와 융합되는데 큰 기여를 한다.
반면, 전통적인 음악교육시스템에 있는 많은 연주자들은 그 호된 훈련과정 때문에 자신감을 상실 하기 쉬울뿐더러, 콩쿠르나 부모와 학교가 만들어 주는 연주 기회안에서만 머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주기회가 적다. 그리고 유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최고의 콩쿠르에서 입상하지 못하는 것에 절망한다. 누군가 나를 위해 연주나 활동 기반을 더 이상 제공해 주지 않음에도 절망한다.
청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해설이 있는 음악회, 유튜브 상의 새로운 시도들, 사회의 어려운 곳을 위한 자선 음악회 등이 그나마 음악계가 사회와의 접점을 가지려는 시도였다면, 이젠 좀 더 다양하고 신선한 프로젝트들을 스스로 준비해 보면 어떨까? 예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말자.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언제나 돈을 만들 수 있다. 다만 많은 과정을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을 생각해 보라. 지금부터 그런 자질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단순히 예술대학을 졸업했는 지를 놓고 전공자와 비전공자로 구분할 수만은 없게 됐다. 지금의 시대는 미술, 디자인 등 모든 분야에서 비전공자들이 감각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다.
대부분의 음악 전공자에게 이제 미래 연주활동의 경쟁자는 같은 음악인만이 아니다.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자신이 음악가라고 생각하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자다.
임미정은 피아니스트이자 한세대학교 교수, 음악 NGO인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Music For One)의 설립자다. 음악을 통한 남북 교류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음악 교육 프로젝트를 한국, 아프리카 국가에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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