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26, 2014

화목한 가정이 전교 1등을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2014-06-25 12:01글자 작게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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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을 만드는 힘은 뭘까. 중앙일보 ‘열려라 공부’는 지난해 6월 5일부터 ‘전교 1등의 책상’을 통해 각 학교 전교 1등을 소개해왔다. 스스로 세운 공부계획은 꼭 지킨다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학생부터 둥글둥글한 성격에 공부가 좀 느슨한 학생, 공부보다 피아노 치기를 더 좋아하는 학생, 심지어 아이돌 팬 활동이 중요한 일과인 학생까지 전교 1등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성격이나 공부법이 다르더라도 전교 1등을 만든 공통분모가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소개한 22명 가운데 18명에게 다시 물어 전교 1등의 공통점을 뽑아봤다.

정서적으로 안정 … 아빠 효과 커

1966년 미 존스홉킨스대 제임스 콜먼 교수는 ‘콜먼의 교육기회 균등에 대한 연구’(콜먼 보고서)를 발표했다. 학생 60만 명과 교사 6만 명, 그리고 이들이 속한 학교 4000개를 광범위하고 폭넓게 연구한 뒤 교육정책이나 학교시설·교육과정·교사의 질 등 소위 ‘학교 효과’보다 ‘학생의 가정 환경’과 ‘친한 친구의 가정 환경’ 두 요소가 학업성취도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가족 간 끈근한 정서적 유대감이 심리적 안정감을 줘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 분석한 18명의 전교 1등에게서도 ‘가족 간 끈끈한 유대감’이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부모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1(매우 소원)~5(매우 친함)까지 선택하게 했더니, 3명만 4를 선택했을 뿐 나머지 15명 모두 최고점 5를 골랐다. 부모에게 똑같은 질문(자녀와 얼마나 가까운가)을 던진 결과 부모가 느끼는 친밀도는 더 높았다. 2명만 4를 선택하고 나머지 16명이 5를 택했다.

또 대상자 18명 모두 “부모와 대화하는 게 어렵거나 꺼려지지 않다”며 “부모님은 항상 믿고 응원해주는 든든한 후원자”라고 입을 모았다. “공부좀 해라” “엄마가 뭘 알아”란 식으로 이어지는 부모·자녀 간 흔한 갈등은 전교 1등 집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이들은 부모를 ‘귀찮은 간섭자’가 아닌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로 인식했다.

이런 좋은 관계는 공부 습관에 영향을 끼쳤다. ‘공부 관련해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7명(38.9%)이 부모, 2명(11.1%)이 형제를 꼽아 응답자 절반이 가족으로부터 긍정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인지 대부분(12명) “집이 편하다”며 “집에서 공부한다”고 답했다.

한국자기주도학습연구회 정철희 회장은 “특히 아빠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엄마에게서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다면 아빠와 경제·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대화하면서 자연스레 논리력·사고력을 기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신문을 읽고 아빠와 토론한다거나(대전 유성고 2학년 장지호군, 2013년 11월 13일자), 아빠와 다양한 직업군의 인물 인터뷰를 함께 하며 진로 고민을 푸는 경우(서울 중동고 2학년 지우영군, 2014년 3월 19일자) 등이 대표적이다. 아빠가 집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며 독서습관을 들였다는 학생도 많았다.

사교육 도움 없이는 공부를 잘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정말 그럴까.

전교 1등의 사교육 의존도를 알아봤더니 학원(과외 포함)에 전혀 다니지 않는 학생도 5명(27.8%)이나 됐다. 학원에 다니는 학생도 현재 받고 있는 사교육 갯수는 평균 2.4개 정도였다. 투입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8시간이었다. 이들은 학원을 다니더라도 평일엔 하루 평균 3.7시간, 주말엔 6.5시간을 혼자 공부했다. 일주일 평균 31.5시간이다. 학원 공부로 그치는 게 아니라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4배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하는 셈이다.

메타인지 능력 뛰어나

전교 1등들은 학원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학원에 맹목적으로 기대거나 무조건 거부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전략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학년이 올라가면서 대체로 학원을 점점 줄여나갔다. 압구정고 3학년 조성환군(2014년 6월 11일자)도 그렇다. 조군은 고1 때까지는 조급한 마음에 국어·영어·수학·사회·논술까지 과목별로 학원을 다녔다. 그러다 고1 겨울방학 때 사회·영어·논술 학원을 그만뒀고, 고2 1학기 때 국어, 고2 겨울방학 땐 수학 학원마저 끊었다. 그는 “학원 가는 시간을 줄여 혼자 공부하면서 내용을 더 꼼꼼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교육전문가들은 이런 전략적인 공부습관을 메타인지적 지식으로 설명한다. 메타인지적 지식이란 무언가를 배우거나 새로운 일을 실행할 때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말한다. 자신이 모르거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실천능력까지를 포함한다. 행복한공부연구소 박재원 소장은 “최상위권 학생은 학원에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고 필요에 따라 학원을 선택하고 이용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교 1등의 공부습관에서 메타인지적 지식을 엿볼 수 있었다. 바로 ‘묻고 답하는 공부법’이다. 보드판에 풀이를 쓰고 강의하듯이 설명하는 방식(서울 반포중 2학년 임한창군, 2013년 6월 5일자)이라던가 친구와 팀을 짜 잘하는 과목을 한 과목씩 맡아 서로 멘토·멘티를 해주는 공부법(서울 대원외고 1학년 고병욱군, 2014년 2월 5일자)이 대표적이다. 전교 1등들은 “모르는 것은 확실히 알 때까지 반복해서 확인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에게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된다”며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메타인지적 지식이 발달한다”고 설명했다.

전교 1등 월 평균 3.6권 독서
국·영 공부에 큰 투자 안 해도 성적 좋아


독서·스포츠·음악 꾸준히


전교 1등의 또다른 특징은 독서다. 18명 중 15명(83.3%)이 학업과 무관한 책을 월 평균 3.6권 읽고 있었다. “공부하느라 책 볼 시간 없다”는 건 그야말로 핑계인 셈이다. 전교 1등 중엔 독서광이 많은데, 이 역시 부모 역할이 크다. 매주 자녀와 함께 도서관을 찾는 부모, 공부하라고 다그치기 전에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아빠, 자녀가 책을 읽은 뒤에 함께 토론하며 깊이 있는 독서를 유도한 엄마 등 전교 1등 부모는 자녀의 독서습관 들이기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했다. 박 소장은 “꾸준한 독서는 단지 배경지식 습득뿐 아니라 어휘력·표현력·상상력·논리력 등 학업능력 전반을 끌어 올린다”고 강조했다. 부모와 함께 하는 독서는 부모·자녀 간 정서적 교감뿐 아니라 끈기·집중력·자신감 등 공부에 필요한 기초체력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실제 전교 1등 상당수는 꾸준한 독서 덕에 국어·영어를 수월하게 느꼈다. 세화고 2학년 최영조군(2014년 4월 16일자)은 “어릴 때부터 매일 신문을 정독하고 영어원서를 읽은 덕에 국어·영어 문제풀 때 긴 지문을 만나도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최군은 남들이 국어·영어 공부에 들이는 시간을 수학에 투자한다. 대입전문학원인 이투스청솔 오종운 평가이사는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이 수학”이라며 “국어·영어 성적이 안정적이라 수학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면 전반적인 공부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꾸준한 독서가 국어·영어·수학 간 효율적인 공부량 배분을 이끈 셈이다.

스포츠·음악 활동을 꾸준히 하는 학생도 많았다. 18명 중 13명(72.2%)이 취미생활로 스포츠·음악을 꾸준히 한다고 답했다. 정 회장은 “적절한 운동이 학업성취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운동이 학업능력까지 높여주는 이유는 인체의 혈액순환 구조 때문이다. 다리 근육이 몸 전체의 혈액순환을 돕기 때문이다. 하체 근육이 발달한 사람일수록 정맥의 혈액 순환이 원활해 몸 전체로 피가 잘 돈다. 정 회장은 “운동을 꾸준히 하면 다리 근육이 발달하고, 이는 혈액순환을 좋게 해 뇌에 산소공급을 원활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적당한 운동은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머리를 산뜻한 기분으로 유지해준다”며 “영·미권 유명 사립학교가 스포츠를 강조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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