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24, 2014

유기견들의 마지막 소풍… 작은 기적의 시작이었다


입력 : 2014.06.25 03:01 | 수정 : 2014.06.25 09:44

문 닫을 위기 평강공주보호소 
"하루라도 신나게 뛸 수 있게" 150마리 마지막 소풍 추진
소문 퍼지며 소액 후원 몰려… 보름 만에 5000만원 모금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던 소풍이 기적을 불러왔네요."

지난 22일 낮 경기 안성시 삼죽면에 있는 한 사설 애견 훈련소에 150마리의 개들이 나타났다.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간 더운 날씨에 개들은 혀를 내밀고 헉헉거리면서도 2645㎡(800평) 잔디밭을 내달렸다. 전국에서 온 자원봉사자 180명이 함께 뛰놀았다. 그들은 개들을 껴안고 "예쁘다"고 외쳤다.

사람과 개가 한데 뛰노는 이날 행사에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소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소풍의 주인공은 인근 '평강공주보호소'(이하 보호소)의 유기견들. 보호소는 '평화로운 강아지·고양이들의 공동 주거 공간'이라는 뜻의 유기견 보금자리. 이곳은 전세기간이 끝나고도 옮겨갈 곳을 못 찾아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다. 땅 주인은 "차라리 4억5000만원에 땅을 사라"고 했다. 계약금 1억원만 내고 잔금은 천천히 내는 조건이었다. 보호소를 만들어 운영해온 김자영(53)씨는 하지만 1억원도 버거운 형편이었다. 후원자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보탰지만 6월 초까지 모인 돈은 5000만원 남짓. 최악의 경우 유기견들을 안락사시키고 보호소를 문 닫는 길밖에 없었다. 김자영씨는 "좁은 견사에 갇혀 있던 강아지들이 마지막으로 단 하루라도 신나게 뛸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며 마지막 소풍을 기획하고 봉사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게 지난 6일의 일이다.

  지난 22일 경기 안성 클로버독 훈련소에서 유기견과 짝을 이뤄 나들이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그린 강아지 그림을 들고 잔디밭에 앉아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 22일 경기 안성 클로버독 훈련소에서 유기견과 짝을 이뤄 나들이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그린 강아지 그림을 들고 잔디밭에 앉아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보호소에서 1년간 청소 봉사를 해온 이예현(17·안성창조고 2년)양이 소풍에 동행할 친구를 찾는다는 포스터를 학교 게시판에 붙였다. '개 좋아하고 사랑하고 산책시킬 자신 있는 사람! 안성의 유기동물보호소가 사라질 위기입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소풍을 갑니다. 평소엔 우리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개들을 위해 시간과 돈을 내주세요!' 페이스북에도 포스터 사진을 올렸다. '마지막 소풍' 소식이 퍼져 나가면서 기적이 시작됐다. 5000원부터 5만원까지 작은 정성들이 몰려들었다. 단 보름 만에 자원봉사자 180명, 후원금 5000만원이 모였다. 김씨는 이날 잔디밭에서 "오늘로 계약금 1억원이 마련돼 보호소를 지킬 수 있게 됐다"며 허리 숙여 인사했다.

보호소에는 버려진 개 330마리와 고양이 90마리가 산다. 다른 유기견 보호소에서 10년 넘게 봉사활동을 했던 김씨가 2004년 직장을 그만두고 사비를 털어 문을 열었다. 2011년 가수 이효리씨가 이곳에서 유기견을 입양한 사실이 알려져 유명해졌다. 한 달 운영비 450만원은 대부분 후원금으로 충당하지만 유기견들의 병원 치료비는 10개월째 밀려 있다. 김씨는 "자선 음악회나 바자회를 열고 대기업의 문도 두드려 어떻게든 잔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유기견)이 두 번째, 세 번째 소풍을 떠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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