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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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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박근혜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내세워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박근혜 정부가 무척 반기업적이라고 생각한다.
반기업적이란 판단의 근거는 경찰과 검찰뿐만 아니라 육해공군까지 ‘유병언 체포작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유병언씨를 잡기 위해 해군은 평택 2함대, 목포 3함대, 대잠초계기, 링스헬기 등을 투입했다. 육군은 31·39·53사단 병력이 수색에 나섰다. 공군은 해안감시 레이더를 동원했다.
유병언 체포작전에 동원된 군 병력과 장비들은 평소 서해와 남해에서 북한 간첩선이나 잠수함 등의 침투에 대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런 장비와 병력을 유병언 체포작전에 투입했으니 유병언씨가 테러 관련 혐의쯤은 포착된 것으로 생각했다. 미군이 오사마 빈 라덴 추적에 앞장섰듯이 말이다.
유병언씨 수배전단을 유심히 살펴봤다. 제목이 ‘특경법 위반 피의자 유병언 수배’였다. 특경법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준말이다. 수배 전단에는 ‘피의자는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회장으로, 청해진해운 등 법인 자금의 횡령·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라고 적혀 있다. 회삿돈 빼돌렸다고 군대가 출동하는 상황이니, 기업인 처지에서는 이보다 반기업적인 정부가 있을까 싶다.
변호사들은 횡령, 배임, 조세포탈 혐의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대표적인 재산범죄라고 한다. 지난 2월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이 대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재현 씨제이그룹 회장도 배임, 조세포탈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유병언 체포작전에 군이 투입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질책 때문이다. 지금껏 박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유병언씨 체포 문제를 네차례 언급했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검토해” 검거하라고 지시했다.
어떤 사람은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이니, 유병언씨를 잡는 데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맞다.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다. 하지만 대통령 마음대로 군대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74조 1항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고 돼 있다.
헌법은 국군의 사명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헌법 제5조 2항) 누가 봐도 ‘경제사범 유병언 체포작전’과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는 관계가 별로 없다.
헌법은 원칙적으로 민간인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사상 기밀, 초병, 초소, 유독음식물 공급, 포로, 군용물, 비상계엄 선포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민간인에 대한 군사법원의 재판 관할권을 인정하고 있다. 유병언씨가 초병에게 유독음식물을 공급하지도 않았는데 왜 군인들이 체포작전에 나서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 10일 권오한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소장)이 군복을 입고 유병언씨 검거 관련 유관기관 회의에 참석했다. 합참은 최고 전쟁지휘부다. 합참 작전부장은 국군의 작전을 책임지는 참모다. 합참 작전부장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거나 핵실험 조짐 등 북한군의 특이 동향이 있으면 군의 초동조처를 이끄는 위기조치반장을 맡는다. 합참 작전부장은 하루 중 깨어 있는 시간은 북한군만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합참 작전부장에게 유병언씨 체포의 부담을 지우는 것은, 군 경계태세를 흔드는 행위다. 입만 열면 튼튼한 안보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가 할 짓이 아니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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