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29, 2015

우리나라에서 슬랙(slack) 같은 세계적인 제품이 나오지 않는 이유  일하며 살기 
2015/05/2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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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의 소프트웨어 제품을 쓰고 난 이후 잘나가는 회사를 보면 기분이 참 좋다.
왠지 그 회사의 잘나감에 우리 제품이 무언가 큰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 때문이다. (착각은 돈이 안드는 즐거움이니 자유를 만끽하도록 내버려 두시라)

며칠 전에 현재까지 7년 가까이 우리 제품을 쓰고 있는 고객 회사의 대표님과 미국 법인장으로 계시는 임원분이 우리 회사를 방문하셨다.
그동안 크게 성장하여 4년 전쯤에 코스닥에 상장한 회사라서 평소 마치 우리 제품을 써서 잘된 것처럼 좋은 사례로 영업에 활용할 때도 가끔 있다.

방문 목적은 우리 제품의 기능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의견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현재 우리 제품과 미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슬랙(slack)이라는 제품을 같이 쓰고 있어 불편하니 우리 제품에 슬랙의 몇가지 좋은 기능을 추가했으면 편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미국에서 가장 핫(hot)하다는 슬랙(slack)은 일종의 기업용 메신저로 뛰어난 협업 기능을 갖추고 있어 출시된지 1년만에 3억달러가 넘는 투자를 유치한 엄청난 제품이다.
하지만 슬랙은 우리 제품의 여러 기능 중 한부분에 해당하니 슬랙만 쓸 수는 없고 우리 제품의 슬랙에 해당하는 기능에 슬랙의 좋은 요소를 반영한다면 굳이 두 제품을 같이 써야할 이유가 없으니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이런 생산적인 목적으로 바쁘신 분들이 우리 회사를 방문하셨다니 황송하고 우리 제품이 부족하여 물건너 먼나라 제품까지 또 쓰게 하는 불편을 드려 죄송할 따름이다.

우리 제품의 기능 개선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나서 방문한 고객사의 미국 법인장으로 계시는 임원분께서 미국의 업무용 소프트웨어의 경험담을 들려주시면서 자연스레 이와 비교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의 환경으로 화제가 옮아가서 얘기가 길어지게 되었다.

내 멋대로 그날의 화제를 요약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왜 슬랙(slack)과 같은 제품이 나오지 않는가?"이다.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능력으로만 놓고 본다면 미국에 비해 크게 뒤질 것은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슬랙 정도의 프로그램은 6개월 안에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프로그래머가 우리나라에는 수두룩하다. (너무 심했나)



그렇다면 왜? 무엇이 문제인가? 그날의 대화 중 내 나름의 진단을 적어 본다.

1. 우선은 국내의 소프트웨어 시장이 너무 작다. 그중에 기업의 업무용 소프트웨어 시장은 작아도 너무 작다.

소프트웨어가 단일 제품으로 생산(개발)과 유통(영업, 마케팅, 판매 등), 관리, 지원 등 사업 활동이 제대로 유지되려면 15~20여명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연간 최소 10억 이상, 적정하게는 2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어야 개발 회사가 유지된다.

그러나 현실은 20명은 커녕 겨우 5명 유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기업 업무용 소프트웨어 중에 단일 제품으로 한 기업에서 1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게 그리 흔치 않다.
한마디로 소프트웨어 단일 제품만 가지고는 생존이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전념할 수 없게 되고 어쩔 수 없이 그래도 큰 시장인 이른바 SI(system integration)에 뛰어드는 것이다.

2. '이른바' SI(system integration) 시장의 금액 규모로 본 비중이 너무 크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완제품 시장은 너무 작다.

사실 우리나라 기업 소프트웨어의 잠재시장으로 보면 작은 규모가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2012년도 우리나라 기업 통계를 보자.

 2012년도 기업 규모별 사업체 수 / 종사자수
 규모
사업체 수
비율
 종사자 수
 비율
 전체
 3,354,320
 100 %
 14,891,162
 100 %
 소기업(50인 미만)
 3,258,617
 97.1 %
 9,295,775
 62.4 %
 중기업(50~299인)
 92,787
 2.8 %
 3,763,597
 25.3 %
 대기업(300인 이상)
 2,916
 0.1 %
 1,831,790
 12.3 %

통계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사업체 수는 330만개가 넘는다. 우리 제품처럼 50인 이하의 소기업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소프트웨어의 이론적 잠재 시장은 320만개로 어머어마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야말로 잠재시장일 뿐 현재의 실제시장은 아니다.

우리나라 현재의 소프트웨어 관련 시장은 사업체 수로는 0.1%, 종사자 수로는 12.3%에 불과한 대기업 시장이 90%를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시장은 곧 SI(system integration) 시장이라 해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완제품이 설 땅이 매우 좁다.

3. 소프트웨어 제품 유통 구조가 없다. 생산해도 팔 수가 없다.

위에서 보았듯이 그나마 잠재시장이 있지만 그것을 팔 수 있는 유통 시스템이 없다. 따라서 당연히 자동차는 '자동차 딜러', 보험은 '보험 설계사'와 같이 일선에서 제품을 팔 수 있는 소프트웨어 제품 유통 전문가가 없다.
그래서 제품을 만들고도 독자적인 유통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많은 소프트웨어 제품 개발회사들이 이런 유통 구조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된다.

이 바닥에서 자칭 타칭 개발 전문가는 많이 보았어도 '소프트웨어 프로 세일즈맨'이라고 해야 하나 스스로 유통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4. 미국은 시장도 크고 유통 구조도 있는데 미국 시장을 보고 제품을 만들면 되지 않나? 맞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미국 유통 시스템에 접근하지? 나는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내 소프트웨어 제품 유통 전문가도 없어 헤메이는 판에 미국 유통 시스템을 이해하고 실제로 판매하는 것은 어찌해야 할 지 감이 안온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미국 시장이 있다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능력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미국 시장 유통이 가능한 전문가의 짝짓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려야 한다.

5. 미국과 같이 스타트업(startup)에서 투자받아 엑싯(exit)을 목표로 제품을 완성하면 되지 않나? 맞다. 그런데 스타트업해도 출구는 안보인다.

도대체 스타트업 스타트업하는데 일반 신생 기업하고 뭐가 다른가?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굳이 스타트업(startup)이라고 하는 걸 보니 무언가 끝(finish)이 있나 보다. 그게 출구(exit)일 것이다.
스타트업의 출구는 대개 IPO(Initial Public Offering, 주식 공개 상장)이거나 M&A(Mergers and Acquisitions, 인수 합병)이다.
풀이하자면 미국은 스타트업(startup)해서 투자받고 완성하고 엑싯(exit)하고 그 자금으로 다시 스타트업하는 선순환 구조의 생태계라는 얘기이다.
(start -> 투자 -> 제품 완성 -> exit -> re-start . . .)

그리고 출구를 못찾아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생태계가 또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온라인 상에서 주워들은 풍월이니 실제는 어떤지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과연 스타트업이 가당키나 한가? 차에 시동을 걸고(startup) 고속도로에 오르니 출구(exit)가 안보인다. 그냥 영원히 달리는 수 밖에. 그런데 중간에 주유소도 안보인다. 연료가 떨어졌다. Game over.
(start ->exit 없음 -> 투자 없음 -> 돈떨어짐 -> stop)



* 부탁의 말씀 : 이 글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소 능력이 떨어지는 프로그래머의 변명으로 여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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