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쓰기 1년 만에, 國語기초학력 미달 '0'(2011년 당시 경북여고 2학년생)]
학생 저자 10만명 프로젝트 - 대구교육청 2009년부터
정규수업·동아리 활동 지원, 78명은 출판까지 이뤄
스마트폰·게임서 벗어나자 - "책 쓰려면 책을 읽어야 하고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생겨… 꿈 키우며 進學에도 큰 도움"
10여校 정규 수업시간에 가르쳐…
책상에 5분도 못 앉던 아이들, 차분해지고 집중력 생겨
"언니,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글이 잘 써지지 않아요."
"주머니에 종이를 넣고 다니며 아이디어를 메모해봐. 잔디에 누워 하늘을 보면 글감이 떠오르기도 해."
6일 오전 대구 경북여고 도서관에 원고지와 볼펜을 든 1·2학년 20여명이 모였다. 책 쓰는 동아리 '곱창(곱게 쓰는 창작 동아리)' 소속인 이들은 방학 중에도 학교에 모여 책 쓰는 동안 궁금하거나 답답한 내용을 3학년 선배들에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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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오전 대구 경북여고 도서관에서 책 쓰기 동아리 ‘곱창’ 학생들이 선·후배들이 쓴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도교사 전윤정(서 있는 사람 맨 오른쪽)씨는 “책을 쓰면서 은어·비속어 등에 오염된 학생들의 말이 고와지고, 교우 관계가 돈독해지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남강호 기자
경북여고에 입학한 학생이라면 이 동아리에 들지 않아도 누구든 자신의 책을 쓸 수 있다. 경북여고는 올해로 4년째 '책 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1학년을 대상으로 매주 1시간씩 책 쓰기를 가르치고 1학년 300여명은 자기 이름으로 책을 쓴다. 왕연주(16)양은 "중학교 땐 욕도 많이 했고, 만날 TV에 나오는 아이돌 가수 보느라 바빴는데, 내 책을 쓰면서부터 과격했던 감정 표현이 줄었다"고 했다.
인터넷·스마트폰에 빠져 청소년들이 책이나 신문 읽기를 등한시한다고 걱정들이 많지만, 대구는 예외다. 대구시교육청은 2005년부터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펼친 데 이어, 2009년부터 '학생 저자 10만명 양성 책 쓰기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만 4년 만에 대구에서는 4만여명의 '학생 저자'가 나왔다.
현재 대구 초·중·고의 책 쓰기 동아리만 800여개. 경북여고처럼 정규 수업에 책 쓰기 교육을 하는 학교도 10여곳 된다. 이렇게 해서 소설·시·동화 등 문학작품, 여행기·자서전, 수학·과학 등 교과목을 쉽게 풀어쓴 책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 책들 가운데 78권은 출판으로 이어졌다.
◇읽고 쓰며 꿈 찾기… 책 쓰기의 기적
6일 오후 대구 화원초등학교 도서관에서도 책 쓰기 동아리 5~6학년 학생들이 모여 각자의 글을 돌려 읽고 있었다. 화원초는 올해로 5년째 책 쓰기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매년 책을 만들어왔다. 지난해 친구들과 책을 출판한 이예진(13)양은 “말로 하기 힘들었던 마음을 글로 풀어냈다”며 “친구들 글을 읽으니 서로 속마음을 알게 돼 전보다 더 친해졌다”고 했다. 김견숙(31) 교사는 “5분도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산만했던 아이들도 책 쓰기 수업을 반복하다 보면 차분해지고 집중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책 쓰기는 학생들에게 꿈을 찾아주기도 했다. 이지혜(17)양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방황하다 자퇴한 10년 지기 친구를 위해 쓴 시들로 시집을 엮었다. 시를 읽은 친구가 ‘희망을 줘 고맙다’며 검정고시를 보기로 했다. 이양은 “내가 쓴 시가 친구에게 힘이 됐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예술치료사가 돼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 성적도 올랐다. 올해 경북여고 졸업생이 2011년에 치른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국어 과목에서 기초 학력 미달자가 하나도 없었다. 2010년만 해도 1.44%가 기초 학력 미달자였다. 국어 과목의 우수 학력자는 2011년(40.04%)에 2010년(30.91%)보다 9%포인트 늘어났다. 1학년 때부터 받은 책 쓰기 교육의 효과라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우울증 소년을 일으킨 책 쓰기
길효정(18)양은 소설을 써 학교 폭력을 당한 동생의 마음을 달랬다. 동생은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숨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길양이 동생을 위해 책을 썼다. 날개가 찢어진 나비가 아픔을 숨기지 않고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길양은 “책을 읽은 동생이 힘들었던 걸 털어놓았다. 책 쓰면서 동생을 이해하게 됐고, 더 가까워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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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오후 대구 달성군 화원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책 쓰기 동아리‘글나래’학생들이 각자 쓴 글을 친구들과 돌려 읽고 있다. 학생들은 이날 친구들이 말해준 의견을 바탕으로 글을 고친 후 개학 날 원고를 가져올 계획이다. /남강호 기자
얌전하고 조용했던 이재민(19·대학교 1학년)씨는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해 우울증을 앓았다. 2007년 노변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수없이 결석했다. 그때마다 이군은 집에서 시를 썼다. 이씨에게서 문학적 재능을 발견한 전윤정(29) 국어교사가 시를 계속 쓸 수 있도록 격려했다. 그렇게 쓴 시를 모아 2009년 시집을 냈다. 이씨는 “시를 쓰면 고해성사를 하듯 어두운 감정을 뱉어내는 느낌이 들었다”며 “시집을 만들면서 우울증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우동기(61) 대구시교육감은 “스마트폰과 게임·인터넷에만 빠져 사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글과 말로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의 학력을 높여주고, 인성을 다스리는 좋은 교육이 되기 때문에 꾸준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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