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15, 2013

[특파원 리포트] '미국식 칼퇴근'의 裏面

  • 장상진 뉴욕 특파원
  • 입력 : 2013.07.15 03:01
    
 장상진 뉴욕 특파원
     장상진 뉴욕 특파원
    "한국에서 일부 고용주가 외국인 근로자를 폭행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혀를 찼어요. '원 세상에 못 배워먹은 사람들 같으니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막상 처음 해외에서 현지 직원을 채용해 일을 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어떤 때에는 진짜로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고 손이 올라가는 저 자신을 보고 저도 놀랐어요."

    지난달 맨해튼에서 만난 한국 기업 관리직 A씨가 말했다. 그는 "한창 바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샤워 중 귀에 물이 들어가 병원에 가야겠다'며 당일 아침에 돌연 병가(病暇)를 내고, 연말에 결산을 앞두고 전 직원이 연일 밤샘 근무 중인데 갑자기 '계획된 겨울 휴가를 가족과 함께 가야겠다'고 태연히 말하는 직원을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더라"고 했다.

    그의 '고백'은 이어졌다.

    "그런데 말이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다 보니 제가 이상해지는 거예요. 곰곰 생각해보니 얘네들 말이 맞는 것 같더라 이거죠.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내 몸이고, 일도 결국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건데'라는 생각이 듭디다. 결정적으로, 지나놓고 보니 성과에도 큰 차이가 없었어요."

    그는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고 절대 서울 본사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다면 미국인 근로자는 한국인보다 훨씬 비효율적일까. 작년 가을 앨라배마에서 만난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생산성은 미국 근로자 쪽이 최소 30% 이상 높다"고 말했다.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공장 내 구내식당을 가리켰다. 미국 근로자가 점심 식사를 하는 시간은 15분을 넘지 않더라는 것이다. 한국 근로자들이 부러워하는 '미국식 칼퇴근'의 이면에는 직장에 나와 있는 동안은 식사시간을 아껴가며 최대한 집중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숨겨져 있다고 그는 말했다.

    공감이 갔다. 실제로 맨해튼 전 지역을 통틀어 점심 식사 때 2시간씩 붐비는 거리를 코리아타운 말고는 거의 보지 못했다. 대신 푸드트럭에서 산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사무실로 향하는 직장인은 수없이 볼 수 있다.

    식사시간뿐이랴. 한 국내 대형 뉴스사이트의 '시간대별 국내 접속자 유입'을 관찰해보면, 한국 근로자의 근무 행태를 머릿속에 쉽게 그릴 수 있다. 이 사이트에서 하루 중 접속자가 급증하는 시간대는 오전 9시와 오후 2시, 오후 5시 무렵이다. 출근 직후, 점심 후, 퇴근 직전에 웹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개인의 권리 행사'를 못마땅하게 보는 한국식 집단문화와 권위주의에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자기 일을 모두 마쳐도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먼저 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굳이 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이 업계 최초로 직원 야근과 팀장의 인사고과를 연결하는 등 초강수를 통해 '야근 철폐'에 나섰다고 한다. 분명 반가운 소식이지만, 우리 직장인들이 환호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미국식 칼퇴근의 이면(裏面)'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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