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23, 2015

입력 : 2015.06.24 03:00 | 수정 : 2015.06.24 09:23

영화 '연평해전'을 보고… 故박동혁 병장 어머니가 말하는 연평해전


 故박동혁 병장 사진
 故박동혁 병장
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이 24일 개봉한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으로 붉게 물들었던 2002년 6월 29일 오전에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한 북한 경비정과 외롭게 싸운 참수리 고속정 357호의 이야기다. 당시 희생된 여섯 용사 중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이경진씨가 '연평해전'을 보고 아들을 추억한 글을 싣는다. 구술을 받아 정리했다.
그날 국군수도병원으로 달려갈 때는 윤영하 정장이 전사할 정도니까 내 아들도 총 한 방은 맞았겠지, 막연히 그런 생각뿐이었습니다. 동혁이는 총상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상태로 84일간 생사를 헤매다 갔습니다. 유족들은 당연히 교전 현장을 보지 못했고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영화 '연평해전'이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스무 살밖에 안 된 의무병 동혁이가 그렇게 열심히 싸웠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북하고 싸웠다고만 들었지, 내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쓰러졌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서)후원이가 갑판에 쓰러지자 동혁이가 그 자리로 가서 욕을 하면서 총을 쏘더군요. 엄마로서 안쓰러웠습니다. 생존 대원의 증언으로 만든 이 영화가 실제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80%는 사실일 거라고 믿습니다. 김학순 감독님은 영화에서 동혁이 엄마를 농아(聾啞)로 만드셨더라고요. 저한테 쌓인 한(恨), 너무 할 말이 많아서 오히려 말을 못 하는 것으로 표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고(故)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이경진씨는 13년 만에 영화로 아들과 재회했다.
 고(故)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이경진씨는 13년 만에 영화로 아들과 재회했다. /로제타시네마 제공
천안함에서 근무하던 동혁이는 2002년 4월에 참수리 고속정 357호로 전입을 갔고 휴가를 나온 적이 없어서 대원들과 어떻게 지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6월 18일에 전화가 걸려와 '엄마, 나 7월 1일에 평택 2함대 들어가니까 데리러 와' 했는데 안산 집에서 평택까지 40분 걸립니다. 동혁이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에서 비통했습니다. 유족들은 영화를 보고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떠나 보낸 아들이나 남편을 보면서 저처럼 울었겠지요.

영화를 보고 며칠 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영화 포스터를 거실에 붙여놓고 쳐다보면서 울었습니다. 357호 대원들, 우리 아들들이 다정하게 지냈더라고요. 장했습니다.
태풍 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동혁이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엄마 이거 비밀인데 바다 어디쯤 피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다른 땐 전화가 없는데 태풍 오는 날이나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꼭 그랬습니다.
동혁이를 연기한 배우(이현우)가 아들을 좀 닮았어요. 동혁이가 미남은 아니고 키도 작지만 인간성은 참 좋았습니다. 악바리가 아니고 순한 편이었어요. 대학 치기공과 다니다 두 살 아래 동생도 대학에 가야 하는데 아빠가 힘들어할까 봐 입대했습니다. 동혁이 사물함에 들어 있던 공책을 나중에 받았는데 서른 살, 마흔 살 인생 계획도 쓰고 부모님 행복하게 해 드리겠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무사히 제대했으면 벌써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았겠지요. 무슨 날, 특히 명절 때면 허전합니다. 작은며느리를 보고 손주도 둘 얻어서 이젠 우리 식구가 여섯 명입니다. 그래도 동혁이 빈자리가 보입니다. 고등어 튀겨서 초고추장 발라주면 잘 먹었는데, 시장에서 고등어가 보일 때마다 아들 생각을 합니다.

 영화 ‘연평해전’에서 외박 나온 박동혁(이현우)을 옆에 앉혀놓고 어머니(김희정)가 소원을 빌고 있다. 아래 사진은 북한 경비정과의 교전 장면에서 부상당한 승조원에게 달려간 박동혁(오른쪽). 스크린 속 전투 장면 30분은 실제 있었던 교전 시간과 같다. /NEW 제공
 영화 ‘연평해전’에서 외박 나온 박동혁(이현우)을 옆에 앉혀놓고 어머니(김희정)가 소원을 빌고 있다. 아래 사진은 북한 경비정과의 교전 장면에서 부상당한 승조원에게 달려간 박동혁(오른쪽). 스크린 속 전투 장면 30분은 실제 있었던 교전 시간과 같다. /NEW 제공
연평해전을 겪고 참 외로웠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버린 군인의 부모"라고 제가 그랬습니다. 이쪽에서는 초상 치르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대통령은 일본 축구장에 가서 빨간 넥타이를 하고 손뼉을 치고 있었습니다. 중환자 대기실에서 면회 시간을 기다리다가 TV로 그 모습이 보이는데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다른 유족들도 그럴 텐데 저희 집은 축구를 안 봅니다. 그 일이 있고 7년 동안 마음대로 인터뷰도 못 했습니다. 유족끼리 슬픔을 견뎠습니다. 그렇게 잊힌 존재였습니다. 이제 영화로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볼 테니 위안이 됩니다. 후원해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동혁이를 보내고 무기력해졌습니다. 심한 우울증,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동혁이가 수도병원에서 '엄마, 나 더 살고 싶어. 집에 갈 수 있어?'라고 글씨를 써서 묻는데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의족 끼고 살면 되니까 더 힘을 내라고 했습니다. 고관절을 뺐기 때문에 의족을 끼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더 살고 싶다고 애원하는 애를 살려주지도 못하고 혼자 집에 돌아와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유족들은 아들과 남편을 잃은 것도 슬픈데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오발이니 도발이니 패전이니 승전이니 해서 더 힘들었습니다. 기무사를 시켜서 저희를 미행하고 도청하고 감시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그랬습니다. 내가 이 나라에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세금 열심히 냈고 아들 낳아서 해군 보낸 죄밖에 없다고. 합당한 죄목을 붙여서 날 잡아가라고 했습니다.

강원도 홍천으로 이사해 소를 사서 기르면서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소가 아침저녁으로 밥을 먹어요. 그럼 우리가 어딜 갈 수가 없습니다. 소가 미련하지 않아요. 주인 발걸음 소리도 알아듣습니다. 저는 그렇게 방황을 끝냈습니다. 봄에는 산불 감시도 하고 요즘엔 수타사 계곡에서 등산객들 물에 빠지지 않게 지키고 있습니다.

저희를 '아들 군대 가서 죽은 집'이라 부르던 동네 사람들이 요새는 '얼굴도 밝아지고 사람 좀 됐다. 그때 하고는 딴판'이라고 합니다. '연평해전' 개봉하면 그분들 모시고 영화 보러 가겠습니다. 357호 대원들, 열심히 싸워줘서 고맙습니다. 엄마는 슬프지만 내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동혁이가 하늘에서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우리 아들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100자평

2015.06.24 06:08:03신고 | 삭제
그때 대통령이 누구였을까? 아하 김일성을 아부지로 부르던 양반이었구나?
2015.06.24 12:18:05신고 | 삭제
이희호,권양숙...임수경 김현 최민희 아..봄날은 간다 부른 사람도 있군 ..연평해전 꼭 보라..보지 않는다면..사람이 아니다.
2015.06.24 12:15:36신고 | 삭제
아무튼 대중과 무현 10년은 역사에 커다란 검은 발자욱이 될것이다.
2015.06.24 12:12:45신고 | 삭제
울나라에어찌저런마귀대통이나타났당가...
2015.06.24 12:08:14신고 | 삭제
그때 정신나갔던 김대중~~~~ 노벨 평호상에 젖어있었던~~ 한심했던 김대중.
2015.06.24 12:07:59신고 | 삭제
오늘 개봉일 첫시간 조조로 보고 왔는데 주위 관람객들이 모두 흐느끼며 영화가 끝나도 일어날 줄 모르더군요. 저도 그 당시 군복무를 했고, 연평해전 전사자 6명 중 2명이 저랑 동갑이더군요. 그 분들의 희생으로 지금 제가 살아있는 게 마치 죄를 짓는 느낌입니다. 참수리 357 용사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남은 생 바르게 살며 용사님들의 은덕 기리겠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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